dimanche 30 décembre 2007

성탄절 할아버지 (Père Noël)

우리나라에서는 성탄절날 선물을 가져다 주는 할아버지를 싼타 클로쓰라고 부르지만 불어로는 Père Noël 이라 합니다. père 는 물론 « 아버지 » 라는 뜻이지만, 이 때는 친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 아버지뻘 되는 사람,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노인 » 등의 뜻입니다. 예를 들어 발작의 소설 Père Goriot 는 우리말로 « 고리오 영감 » 이라 번역하지요. 이것은 mère 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어에는 « 친어머니 » 라는 뜻 외에도 « 동네 아줌마, 할멈, 어멈 » 등의 뜻이 있습니다. 뻬로의 동화집 Contes de ma mère l'oye 를 « 엄마 거위의 이야기 » 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 거위 아줌마의 이야기 » 가 보다 올바른 해석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주 Père NoëlPapa Noël 이라고 부릅니다. papa 는 물론 père 의 애칭. 우리나라에서는 « 크리스마쓰 » 에 « 싼타 클로쓰 » 로부터 선물을 받으며 « 징글벨 » 을 부르지만, 프랑쓰에서는 Petit Papa Noël 이라는 노래가 대표적인 성탄절 노래입니다. 여기서 petit 는 뻬르 노엘의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역시 친근함을 표시하기 위한 표현일 뿐.

한편 Santa Claus 라는 이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Saint Nicolas 의 이름이 변형된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에서 태어난 싼타 클로쓰라는 인물은 사실 유럽에서 오래동안 어린이들의 수호 성인으로 숭배되었던 성 니꼴라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성 니꼴라의 축일날 (12월 6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성 니꼴라로 분장한 사람이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 선물을 나눠 주는 풍습이 있었고, 지금도 드물게 행해집니다. 성 니꼴라는 프랑쓰에서는 특히 북부와 동부 지방에서 인기있는 성인인데, 특히 11세기에, 로렌 (Lorraine) 지방의 작은 도시 쌍-니꼴라-뒤-뽀르 (Saint-Nicolas-du-Port) 의 바질릭에 그의 유해 일부가 안치된 후, 로렌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이 지역에서, 그리고 그 옆 지방인 알자쓰 (Alsace) 에서 성 니꼴라를 기념하는 풍습이 매우 크게 발전했지요.

성 니꼴라를 따라 다니는 채찍 영감 (Père Fouettard) 이라는 인물도 로렌의 수도인 메쓰 (Metz) 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빨간 외투를 입은 성 니꼴라가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동안, 검은 옷을 입은 채찍 영감은 나쁜 아이들에게 채찍질 (fouet) 을 했다고 합니다. 또는 실제로 채찍을 휘두르지는 않더라도, 과자 대신 회초리나 몽둥이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쓰에서는 어린이들에게 겁을 줄 때, 너 말 안들으면 채찍 영감한테 벌받는다라고 위협하지요.^^

따라서 비교적 최근 (육칠십년대) 까지도 프랑쓰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던 명절은 성탄절이 아니라 성 니꼴라의 축일이었다고 합니다. 성탄절에 어른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은 있었지만, 성탄절이 특별히 어린이를 위한 명절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건너온 싼타 클로쓰 문화가 점차 퍼지면서 성 니꼴라의 전통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고, 오늘날 프랑쓰의 어린이들은 일년 내내 뻬르 노엘만을 기다리며 삽니다. 불쌍한 것들, 쯧쯧...

vendredi 28 décembre 2007

성탄절 (Noël)

« 성탄절 » 을 불어로는 Noël 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라띠나어 natalis (출생, 탄생) 로부터 유래했습니다.

NoëlPâques 와 마찬가지로 거의 고유명사 취급을 받습니다. 따라서 항상 첫자를 대문자로 쓰고, 관사가 붙는 일이 드뭅니다. 관사를 붙여야 할 때는 남성단수에 맞춥니다 : le Noël de cette année-là (그 해의 성탄절). 하지만 종종 la Noël 이란 표현도 보고 듣게 되는데, 이것은 성인 축일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미 설명했듯이, la fête de... 의 줄임말이기 때문입니다 : la Noël = la fête de Noël.

Noël 은 역시 Pascal 과 마찬가지로 매우 흔한 사람 이름 (prénom) 이기도 합니다. 여성형은 Noëlle. 또 매우 흔한 프랑쓰 여자 이름 Nathalie (또는 Natalie 및 여러 변형들) 역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어로 성탄절 인사는 joyeux Noël 또는 bon Noël 이라고 하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 또는 joyeuses fêtes 이라고도 많이들 합니다. 이것은 성탄절 뿐 아니라 망년회, 새해 축하연 등 연말연시에 일어나는 많은 잔치들을 다 포함하는 인사입니다 (따라서 복수). 이미 성탄절이 지났으므로, joyeux Noël 이란 인사는 이제 못하지만, joyeuses fêtes, bonne fêtes 은 요즘 어딜가나 자주 주고받게 되는 인사입니다.

lundi 24 décembre 2007

성탄 전야 (réveillon)

성탄절 하루 전날 밤을 불어로는 réveillon 이라 합니다.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깨어 있기 때문이지요 (réveiller = « 잠에서 깨우다 »). 이 말은 특히 성탄 전야에 행해지는 식사를 뜻하기도 합니다. 레베이용은 대개 보통 저녁 식사보다 조금 느지막히 시작하여 자정 무렵, 또는 그 너머까지 가는 매우 길고 푸짐한 식사입니다. 이 때 프랑쓰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양의 음식을, 그것도 매우 기름진 음식을 먹어 치웁니다.

프랑쓰의 성탄 전야 식사에 주로 등장하는 음식들 :

  • 굴, 바닷가재류 (homard, langouste, langoustine), 쌍-쟉 조개 (coquille saint-Jacques)
  • 훈제 연어, 달팽이, 철갑상어의 알 (caviar), 거위나 오리의 기름진 간 (foie gras)
  • 밤으로 속을 채운 칠면조
  • 나무 장작 모양으로 만든 과자 (bûche), 설탕에 절인 밤 (marron glacé), 쵸콜렛
  • 셩빠뉴

물론 가정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전통이 다르지요. 프로벙쓰식 레베이용은 엉트레와 본요리로 생야채와 물고기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대신 후식을 열 세 가지 먹습니다. 그 수가 13인 이유는 예수와 그의 열두 사도에 대한 암시인데, 정확한 목록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대개는 견과, 생과일, 약간의 사탕 종류와 약간의 빵, 과자 등으로서 생각만큼 그렇게 무거운 후식은 아닙니다. 그리고 열 세 가지 후식이 차례차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뷔페 식으로 한꺼번에 내놓기 때문에 조금씩 두루 맛만 보면 됩니다.

사실 프로벙쓰의 열 세 가지 후식이 뷔슈보다 훨씬 간소하고 깔끔합니다. 뷔슈는 설탕으로 둥글고 길죽하게 빚은, 장작 모양 빵에 크림과 버터로 떡칠을 한 과자로, 느끼하고 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프랑쓰 사람들이 뷔슈를 성탄절 후식으로 꼭 챙기기는 하지만, 실제로 뷔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일년에 오로지 딱 한 번만 먹나 봅니다.^^ 그리고 요즘은 점점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뷔슈 (bûche glacée) 를 더 많이들 먹습니다.

bûche traditionnelle et bûche glacée


레베이용이 끝나고 나면 가족이 다 같이 자정 미사에 가는 것이 옛날의 관습이었는데, 요즘은 독실한 사람들 말고는 잔치를 계속합니다. 또 어떤 가정들에서는 자정에 먹는 것을 멈춘 후 미사에 갔다 와서 다시 계속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로 이 때 선물을 주고 받지요 (어린이들은 다음날 아침에). 아무튼 성탄절은 프랑쓰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가는 전통 명절로서, 모든 가족이 다 모여서 함께 축하하고 행복해 하는 순간입니다. 가족 없는 사람들만 불쌍한 거지요... En tout cas, joyeux Noël !

dimanche 23 décembre 2007

프랑쓰의 식사 (repas)

어제도 잠시 보았지만, 프랑쓰의 한 끼 식사는 주로 엉트레 (entrée), 본요리 (plat principal ou plat de résistance), 후식 (dessert), 이렇게 삼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본요리와 후식 사이에 치즈 (fromage) 를 먹는 일이 잦습니다.

보다 큰 식사일 때는 엉트레 앞에 오르-되브르 (hors-d'œuvre) 를 먹기도 합니다. hors-d'œuvre 라는 말은 hors de (-의 바깥에) + œuvre (작품, 작업) 으로 구성된 말로, 결국 진짜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맛보기로 먹는 간단한 음식들을 칭합니다.

때로는 오르-되브르에 앞서 아뮈즈-괼 (amuse-gueule) 을 먹기도 합니다. 아뮈즈-괼은 한입에 낼름 먹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든 일종의 안주거리들입니다. 따라서 주로 아뻬리띠프 (식전에 마시는 술) 와 함께 먹습니다. amuse-gueuleamuser (즐겁게하다, 기쁘게 해주다) 와 gueule (아가리, 주둥이, 낯짝) 로 구성된 단어로, 말그대로 « 주둥이를 즐겁게 해 주는 음식 » 인 것이지요. gueule 이라는 단어가 욕설적인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요즘은 amuse-bouche 라는 말도 종종 쓰입니다 (bouche = « 입 »).

사실 이제는 아뮈즈-괼과 오르-되브르, 엉트레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양과 대접하는 방식에 따라, 셋 중 아무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요. 굳이 구별하자면 아뮈즈-괼과 오르-되브르는 주로 이미 만들어진 찬 음식 (예를 들면 햄 종류) 을 조금씩 내놓는 것이고, 엉트레는 찰 수도 있고 더울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준비와 노력을 들여 조리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아뻬리띠프 (apéritif) 는 입맛을 열어 준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불립니다 (apéritif = « 여는 »). 대부분 달콤한 맛의 술들로서, 실제로 입맛을 돋궈 준다기 보다는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심심하니까 마시는 술입니다.

그런가하면 식사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즉 후식을 먹고 커피까지 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디제스띠프 (digestif) 를 마십니다. 이것은 소화를 도와준다고 믿어지는 술들인데, 역시 실제로는 소화 기능과 별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알콜은 위장의 벽을 조금 확장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음식을 잔뜩 먹었을 때 디제스띠프를 마시면 약간 편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지요. 디제스띠프들은 주로 독한 술들입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디제스띠프에 사용되는 술을 식사 중간에 마시는 일도 있습니다. 이 때는 같은 술이라도 trou normand (노르멍디의 구멍) 이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는 이 목적으로 사용되는 술이 주로 꺌바도쓰 (calvados = 노르멍디의 꺌바도쓰에서 나는 전통 사과주) 이기 때문이며, 이 술을 마심으로써, 한창이던 식사 중간에 공백 (trou) 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트루 노르멍은 매우 크고 푸짐한 식사 때에 주로 행해집니다.

요약하면,
  1. 아뻬리띠프 + 아뮈즈-괼
  2. 오르-되브르
  3. 엉트레
  4. 본요리 (본요리가 여러 개일 때는 중간에, 또는 엉트레와 본요리 사이에, 트루 노르멍)
  5. 치즈
  6. 후식
  7. 커피
  8. 디제스띠프.

물론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치는 식사는 극히 드뭅니다. 주로 성탄절 전야와 새해 전야 식사 때에 이렇게, 또는 이 이상으로 먹지요. 그리고 당연히 지역마다 가정마다 다른 관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벙쓰의 성탄절 식사 때는 열 세 가지 후식을 먹는 것이 전통입니다.

samedi 22 décembre 2007

므뉘 (menu)

저에게는 백만 개의 므뉘 (1 000 000 de menus, Octopus, 2004) 라는 요리책이 있습니다. 울리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이 책은 끄노의 백조 편의 시와 똑같은 원칙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즉 이 책의 모든 페이지는 전채 (entrée), 본요리 (plat), 후식 (dessert) 으로 삼등분 되어 각 부분을 독립적으로 넘길 수 있으며, 매번 100가지 씩의 요리법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서로 다르게 조합하면, 100의 3승, 즉 백만 가지의 서로 다른 므뉘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지요.

menu 란 바로 이렇게 « 한 끼의 식사를 구성하는 여러 음식의 조합 » 을 뜻하는 말입니다. « 한 식당에서 파는 모든 음식의 이름과 값을 적은 표 » 라는 뜻도 사전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현대 불어에서 menu 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거나 드뭅니다. 이럴 때 보다 적당한 말은 carte 이지요. 프랑쓰 식당에서 menu 라고 하면 식당 측에서 일정한 가격에 맞춰 미리 짜놓은 식사 프로그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au menu 로 먹으면 훨씬 선택의 폭이 좁지요. 반대로 à la carte 라고 하면 꺄르뜨에 제시되어 있는 음식들 모두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선택해서 먹는 방식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알 라 꺄르뜨로 먹는 것이 오 므뉘로 먹는 것보다 값이 많이 나오지요.

menu(e) 는 사실은 형용사로 « 작은, 잘게 쪼개진, 또는 자세한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사의 구성을 뜻하는 menumenu détail, 즉 « 자세한 세부 사항 » 이라는 표현이 줄어들면서 명사화된 단어입니다.

여기서 비롯된 menuiser 라는 동사도 있습니다. 이 말은 즉 « 잘게 자르다 », 특히 « 나무를 토막내다 » 라는 뜻인데, 현대 불어에서는 사실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반면 이 동사에서 파생된 menuiserie 라는 말은 매우 자주 쓰입니다 :
« 목공업, 목공 기술, 가구 제조, 가구 공장... » 그리고 « 목공, 목수, 가구 제조업자 » 는 menuisier, -ière 라고 합니다.

한편 menu 에 축소접미사 -et 를 붙인 menuet 는 루이 14세 시대에 프랑쓰 궁정에서 유행했던 춤으로, 작은 발걸음으로 추는 춤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므뉘에는 또한 이 춤을 반주하던 삼박자 풍의 음악을 뜻하기도 하는데, 훗날 춤하고는 상관없는 독립적인 음악 형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jeudi 20 décembre 2007

백조 편의 시 (CMMP)

그동안 보아온 울리뽀의 몇가지 구속과 놀이들 (쏠리씨뛰드, 마튜스의 알고리틈, 문체 연습, 바오밥, 아나에로비, 아크로님, 빨랑드롬, 리뽀그람, 뻥그람, 에떼로그람, 등등) 의 첫시작은 바로 레몽 끄노백조 편의 시 (Cent mille milliards de poèmes, 약칭 CMMP) 였습니다. 1961년, 즉 울리뽀의 창시 후 1년 뒤에 발간된, 울리뽀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시집에서 끄노는 독자 스스로 백조 (100 000 000 000 000) 편의 쏘네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쏘네 (sonnet) 란 간단히 말해, 14행으로 구성된 시인데, CMMP 에서 끄노는 각 행 당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열 개의 선택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10의 14승, 즉 백조 편의 서로 다른 시를 조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이 책은 열 네 개의 띠로 잘라진 특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 이 띠들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독자는 매번 조금씩, 또는 완전히 다른 시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조합을 이루든 간에 의미가 통하고 문법에 맞는 쏘네가 만들어지며, 운의 구조 역시 완벽하게 규칙에 들어 맞습니다.

Cent mille milliards de poèmes, de Raymond Queneau, Paris, Gallimard, 1961.

1961년 초판본 서문에서 끄노는 자신의 책을 스스로 « machine à fabriquer des poèmes (시를 만드는 기계) » 라고 칭했는데, 이제는 컴퓨터 덕분에 이 책은 실제로 기계화되었습니다. 즉 걀리마르사는 1999년에 이 책의 쎄데롬 판을 내었습니다. 열 네 줄로 잘린 종이 조각들을 가지고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쎄데롬판은 훨씬 편리하고, 끌릭 한 번으로 재깍 새로운 시를 조합시켜 줌으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백조 편의 시를 모두 읽기 위해서는 시간 절약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쏘네 한 편을 읽는데 대략 45초가 걸린다 치고, 종이 띠들을 넘기고 조합하는데 넉넉잡아 15초가 걸린다고 했을 때, 백조 편의 쏘네를 모두 읽기 위해서는 하루 24시간씩 일년 내내 읽는다고 해도 총 190 258 751 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리 쎄데롬을 이용한다고 해도 백조 편의 모든 조합을 다 읽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요.

울리뽀 회원들은 CMMP 의 규칙을 쏘네 외의 다른 형식의 시들과 다른 문학 졍르에 적용하기도 하였으며, 영국인 울리삐앙인 스땐리 찹만 (Stanley Chapman, 1925-) 은 끄노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mercredi 19 décembre 2007

쏠리씨뛰드 (sollicitude)

프렁-노앙 (Franc-Nohain, 1872-1934) 은 라벨의 오뻬라, 에스빠냐의 시간 (L'Heure espagnole) 을 위한 대본을 제외하면, 오늘날 알려진 작품이 거의 없는 작가이지만, 쏠리씨뛰드라는 재밌는 졍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 예 :

Appétit vigoureux, tempérament de fer,
Member languit, Member se meurt – ami si cher,
Qu’a Member ?

(입맛 좋고, 강철 같은 성격을 가진 멍베르가 기력을 잃고 죽어 간다 - 소중한 친구여, 도대체 멍베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

sollicitude (걱정, 염려, 배려) 란 위와 같이 (가상의) 친구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을 가진 짤막한 시입니다. 여기에는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형식적 규칙이 있습니다. 우선 반드시 세 줄이어야 하며, 첫 두 줄은 12음절, 마지막 행은 3음절 싯구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행은 반드시 Qu'a 로 시작되어야 하며,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의문문인 동시에 어떤 일반 명사의 동음어여야 합니다. Qu'a Member ? 는 « 멍베르에게 무슨 일이 있나 ? » 라는 뜻의 문장이지만, 동시에 camembert, 즉 « 꺄멍베르 치즈 » 와 발음이 같습니다. 또한 운의 구조는 a a a 여야 합니다 (윗 시에서는 -er).

프렁-노앙의 또다른 쏠리씨뛰드 :

Je viens de rencontrer, allant je ne sais où,
Outchou, le professeur, qui courait comme un fou.
Qu’a Outchou ?

(방금 길을 가다가,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는 우츄 선생님을 만났다. 우츄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

역시 3 행이며, 첫 두 줄은 12음절, 마지막 행은 3음절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행은 Qu'a 로 시작하며, 우츄를 걱정하는 의문문인 동시에, caoutchouc, 즉 « 고무 » 와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의 구조는 역시 a a a (-ou).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재미있는 말장난은 울리뽀 회원들을 자극하였습니다. 특히 쟉 루보올리비에 쌀롱 (Olivier Salon, 1955-) 은 프렁-노앙의 규칙을 넘어서는 현대판 쏠리씨뛰드 (sollicitude moderne) 를 만들었습니다.
쟉 루보의 현대판 쏠리씨뛰드 하나 :

Ils sont des centaines de mille,
Lecteurs de Nothomb ou d’Angot.
Leurs romans, on en cause en ville,
Dans Le Monde ou Le Figaro.
Mais qui lit Mandjaro ?

(노똥이나 엉고의 독자는 수백만명에 이른다. 그녀들의 소설은 도시에서, 르 몽드피가로에서 언급된다. 하지만 누가 멍쟈로를 읽는단 말인가 ?)

이 쏠리씨뛰드는 보다시피 다섯줄이며, 첫 네 줄은 8음절 싯구입니다. 운의 구조 역시 a b a b b 로 더 다양해졌습니다 (-ille, -o). 마지막 줄의 음절수 역시 늘어났지만, 발음에 의한 말장난임은 여전합니다. qui lit Mandjaro ? = «누가 멍쟈로를 읽는가 ? » : Kilimandjaro = « 낄리멍쟈로 산맥 ».

올리비에 쌀롱이 지은 다음의 쏠리씨뛰드는 또 조금 다릅니다 :

Quel est donc ce nageur qui, après un plongeon,
A rejoint les saumons, les bars et les goujons
Dans les profondes eaux : l’océan d’Arpajon ?
Est-ce Turgeon ? Est-ce Padon ?

(잠수 끝에 연어와 농어와 모샘치를 만나러 아르빠죵 대양으로 간 수영 선수는 누구인가 ? 뛰르죵인가 ? 빠동인가 ?)

이건 네 줄로 구성되었으며, 첫 세 줄은 12음절, 마지막 행은 8음절입니다. 운의 구조는 a a a a (-on). 마지막 행은 두 개의 의문문인 동시에 각각 esturgeon (철갑상어) 과 espadon (황새치) 의 동음어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울리뽀 회원들은 재미있는 현대판 쏠리씨뛰드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mardi 18 décembre 2007

마튜스의 알고리틈 (Algorithme de Mathews)

1971년 이후로 니끼 드 쌍-팔과 졍 땅글리의 이름은 분리시켜 생각하기 힘들지만, 땅글리를 만나기 전 쌍-팔은 아리 마튜스 또는 해리 매튜스 (Harry Mathews, 1930-) 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작가 마튜스는 울리뽀의 회원으로 뽑힌 드문 외국인 중 한 명입니다. 비록 마르쎌 뒤셩이 생애 말기에 미국 국적을 얻기는 했지만, 사실상 프랑쓰인이었고, 그의 본질적인 작업이 문학 보다는 미술이었으므로, 마튜스는 실질적으로 최초의 미국인 울리삐앙 작가라 볼 수 있습니다.

마튜스는 울리뽀를 위해 몇가지 구속을 발명했는데, 그 중 재밌는 예 한가지는 마튜스의 알고리틈입니다. 이것은 가로로 쓰여진 일련의 단어들에 차례차례 글자전환을 가함으로써, 세로로 읽혀지는 새로운 단어들의 연속을 얻어내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의 표가 있다고 칩시다 :

C I R E (밀랍)
M U R E (성숙한)
P A V E (도로 포장용 벽돌)
R A L E (불평)

첫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영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두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한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세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두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네번째 줄에는 왼쪽으로 세 번 회전하는 글자전환을 가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표가 생깁니다.

C I R E
U R E M
V E P A
E R A L

이 새로운 표는 첫글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터 시작하여 세로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CUVE (통), RIRE (웃음), PARE (준비된), MALE (남자, 수컷의) 이라는 네 개의 새로운 단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히 간단한 예이고, 실제로는 보다 복잡한 실현을 통해 다양한 어휘들을 얻어내게 되는 것이지요.

dimanche 16 décembre 2007

스트라빈스끼 광장 (Place Stravinsky)

죠르쥬-뽕삐두 쎈터 바로 옆에는 이고르-스트라빈스끼 광장 (Place Igor-Stravinksy) 이 있습니다. place 는 흔히 우리말로 « 광장 » 으로 번역하는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빠리의 쁠라쓰들 대부분은 우리말의 광장이 뜻하는 것처럼 드넓고 탁 트인 공간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스트라빈스끼 광장도 우리말 광장만 생각하고 가보면 비교적 자그마한 장소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빠리의 쁠라쓰들 치고는 의외로 넓은 편이죠. 특히 차가 다닐 수 없어서 더욱 좋은.

스트라빈스끼 광장 1 번지에는 유명한 이르깜 (Ircam) 이 있습니다. Ircam 또는 IRCAM 은 Institut de Recherche et de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아크로님으로, 직역하면 « 음악과 음향의 연구와 조화를 위한 기관 » 이라는 뜻이지만, 한마디로 현대 음악 연구소입니다. 특히 컴퓨터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들과 음악의 관계에 촛점을 맞춘 연구 활동을 합니다. 이르깜은 뽕삐두 쎈터의 부속 기관이지만 독립적인 건물을 갖고 있습니다. 역시 렌쪼 삐아노와 리쳐드 로져쓰에 의해 건축된 이르깜 건물은 뽕삐두 쎈터 만큼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비슷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

이르깜은 방문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안에 들어가봤자 별 볼 것은 없습니다. 도서실을 이용할 수도 있고, 이르깜에서 주최하는 강연이나 다른 여러 행사에 참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문가들을 위한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스트라빈스끼 광장에서 이르깜보다는 그 앞에 펼쳐져 있는 스트라빈스끼 연못 (Fontaine Stravinksy) 을 더 좋아하지요. 졍 땅글리 (Jean Tinguely, 1925-1991) 의 움직이는 조각과 니끼 드 쌍-팔 (Niki de Saint-Phalle, 1930-2002) 의 화려한 색채가 재미난 조화를 이루는 이 연못은 특히 여름에 많은 관람객을 모읍니다. 두 예술가 부부는 이 연못의 실현을 위해 스트라빈스끼의 작품들, 특히 불새 (L'Oiseau de feu) 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높은 음자리표가 하나 있고, 화려한 빛깔의 새처럼 생긴 조각들이 보이긴 하지만, 직접적인 관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아니면 제가 스트라빈스끼의 작품들을 너무 몰라서 뚜렷한 연관성이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반면 쌍-팔의 또다른 대작 따로의 정원과는 그 양식이 매우 닮았습니다.

스트라빈스끼 연못
뒤에 보이는 벽돌 건물이 이르깜


오른쪽 뒤에 보이는 교회는 성-메리 성당 (église de saint-Merri)
왼쪽 뒤는 썽트르 뽕삐두

vendredi 14 décembre 2007

썽트르 뽕삐두 (Centre Pompidou)

썽트르 뽕삐두는 빠리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문화 기관입니다. 석유 공장 같다는 평을 자주 듣는 이 유명한 건물 안에는 다양한 부속 기관들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은 국립 현대 미술관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이 미술관은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중대한 현대 미술관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뽕삐두 쎈터 안에는 상시 전시를 하는 대규모의 현대 미술관 외에도, 특정 주제나 한 예술가에 촛점을 맞춘 임시 전시회를 여는 작은 회랑도 여러개 있으며, 음악/음향 연구소 (Ircam), 영화관, 공연장, 강연장, 어린이용 시설, 책방, 식당 등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랑쓰에서는 극히 드문, 누구나 들어가서 마음대로 책을 꺼내 볼 수 있는 개가식 도서관이 있습니다 (게다가 밤 열 시까지 열려 있는 !!!).

뽕삐두 쎈터라는 이름은 그 기획자가 프랑쓰의 대통령이었던 죠르쥬 뽕삐두 (Georges Pompidou, 1911-1974) 였던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 (죠르쥬-뽕삐두 국립 문화예술원) 이지만, 흔히 Centre Pompidou, 또는 Centre Georges-Pompidou 라고 줄여 부르며, 빠리에 사는 사람들은 자주 Centre Beaubourg, 또는 단지 Beaubourg 라고도 부릅니다. 보부르는 이 건물이 건립되기 이전부터 이 동네를 칭하던 명칭이었습니다.

빠리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공간 (약 15 000 m²) 이 비어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70년대 이전에 보부르는 지저분한 폐허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96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죠르쥬 뽕삐두는 이 버려진 장소에 그의 야망이었던 문화예술 쎈터를 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 건물의 건축은 국제 경연을 통해서 뽑힌 렌쪼 삐아노 (Renzo Piano, 1937-) 와 리쳐드 로져쓰 (Richard Rogers, 1933-) 에게 맡겨졌습니다. 거의 700 여 개의 안건을 제치고 선택된 이 두 건축가의 공동 설계는 놀랍게도, 전통적으로 건물 내부에 숨기는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바깥으로 드러냈습니다 (온갖 종류의 관, 전기/수도 시설, 철근, 공기배출구, 계단...). 하지만 건물 외향의 독창성보다 더 놀라운 점은 제공된 공간의 단지 절반 밖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오늘날 뽕삐두 쎈터 앞에는 보행자들만을 위한 드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1977년 뽕삐두 쎈터가 문을 연 후로 이 광장은 많은 젊은이들과 관광객, 거리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뽕삐두 실내에서부터 내다본 광장의 모습

jeudi 13 décembre 2007

엉덩이가 뜨거워 (L. H. O. O. Q.)

때때로 현대 미술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미술사에 큰 혁신을 가져온 마르쎌 뒤셩 (Marcel Duchamp, 1887-1968) 은 울리뽀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울리뽀의 다른 동료들, 즉 브라포르르 뗄리에 보다 훨씬 이전에 라 죠꽁드 (La Joconde) 를 풍자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919년, 뒤셩은 엽서 만한 크기의 라 죠꽁드의 복제본에 수염을 그려 넣고, 그림 밑에는 L. H. O. O. Q. 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달았습니다. 약자처럼 보이지만 약자가 아닌 이 글자들의 나열은 몬나 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에 대한 뒤셩 나름의 해답입니다. 즉, 뒤셩 생각에 그녀가 살며시 웃을듯 말듯 미소 짓는 이유는 엉덩이가 뜨겁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불어권 사람들이라도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는 말장난입니다. L. H. O. O. Q 의 글자 이름들을 그대로 읽으면, [엘. 아슈. 오. 오. 뀌.] 가 되고, 이것은 마치 불어 문장 Elle a chaud au cul 를 발음한 것처럼 들립니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 » 라는 뜻인데, 실제로 엉덩이 주변의 온도가 높아서 뜨겁다는 뜻이 아니라,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안그래도 라 죠꽁드가 레오나르 드 방씨의 분장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거기다가 수염을 그려서 남자처럼 만들고, 성적인 암시가 들어간 제목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이 그림은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오늘날 난무하는 수많은 라 죠꽁드 풍자화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뒤셩은 이 그림 (보다 정확히는 레디-메이드) 을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 에게 선물하였고, 아라공은 생애 말기에 이 작품을 프랑쓰 공산당에 기증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그림은 여전히 프랑쓰 공산당의 소유품이지만, 2005년부터 뽕삐두 쎈터 (Centre Pompidou) 에 99년간 빌려 주었다고 합니다.

L. H. O. O. Q. de Marcel Duchamp (1919)

mercredi 12 décembre 2007

라 죠꽁드를 위한 므뉘에 (Menuet pour la Joconde)

르 뗄리에 보다 훨씬 이전에 라 죠꽁드에 관심을 가졌던 또다른 울리삐앙이 있습니다. 뽈 브라포르 (Paul Braffort, 1923-) 는 아마도 울리뽀 회원 중 가장 다방면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수학자이자 과학자, 컴퓨터 기술자, 작가, 시인, 화가, 그리고 작곡가 (노래, 영화음악, 오뻬라...) 입니다. 그는 또한 울리뽀의 자매 운동인 알라모 (ALAMO) 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 쟉 루보와 함께). 알라모는 울리뽀와 비슷한 활동을 하지만, 컴퓨터와 문학의 관계에 집중하는 모임입니다. ALAMOAtelier de Littérature Assistée par la Mathématique et les Ordinateurs = « 수학과 컴퓨터에 의한 문학 연습실 » 의 아크로님.

1958년에 브라포르는 라 죠꽁드를 위한 므뉘에 (Menuet pour la Joconde) 라는 짤막한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 노래는 그가 훗날 울리뽀를 위해 발명하게될, 복잡한 수열에 의한 문학과는 달리, 그저 -onde 라는 운을 이용한 재미있는 시에, 므뉘에 풍의 리듬을 붙인 간단한 노래입니다. 몬나 리자를 « 넘 안 예쁜 아줌마 »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대꾸라도 하듯 (voir ce commentaire), 이 노래의 2 절에서 라 죠꽁드는 J'suis pas trop immonde « 나는 그렇게 추하지는 않아 » 라고 외칩니다.^^

이 노래는 프랑쓰의 몇몇 « 지성 » (?) 가수들에 의해 여러번 불려졌습니다. 브라포르의 싸이트에 가면 (cliquer sur Autres chansons, puis Les Jocondes) 이 노래의 여러 녹음을 듣거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음악과 녹음 및 저술 등도). 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씨옹은 당연히 바르바라가 부른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대중 앞에서 녹음한 것.

뽈 브라포르의 라 죠꽁드를 위한 므뉘에 악보
(Partition du Menuet pour la Joconde, de Paul Braffort, 1958)

mardi 11 décembre 2007

라 죠꽁드 (La Joconde)

끄노가 바흐에게 영감을 받아 문체 연습을 지었다면, 르 뗄리에는 끄노의 문체 연습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두 편의 라 죠꽁드 연작을 썼습니다.

라 죠꽁드는 레오나르 드 방씨 (Léonard de Vinci, 1452-1519) 가 그린, 정의 내리기 힘든 미소 (sourire indéfinissable) 로 유명한 초상화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턱대고 영어를 따라 모나 리자 라고 부르지만,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La Joconde (이딸리아어로는 La Gioconda) 입니다. Monna Lisa 라는 별칭은 뒤늦게 리자 델 죠꼰도 (Lisa del Giocondo) 라는 여자가 그림의 모델이었다는 설이 나오면서 생겨났습니다. 이 설은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여 더욱 더 유력한 것으로 인정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리자 델 죠꼰도 외에도 당대의 다른 이딸리아 귀부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며, 심지어 레오나르 자신이 여자로 분장한 채 그린 자화상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리자는 귀족 부인이었으므로 그 이름 앞에는 경칭인 madonna (불어 madame) 를 붙이는데, 옛 이딸리아어에서 madonna 는 간혹 monna [몬나] 라는 형태로 축약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딸리아어와 불어에서는 그림의 제목을 말할 때는 La Gioconda, La Joconde 라 하고, 모델의 이름을 거론할 때는 Monna Lisa 라고 합니다. mona [모나] 는 이딸리아 속어로 « 여성의 성기 » 를 칭하기 때문에, Mona Lisa 라고 쓰는 것은 아무런 뜻도, 근거도 없는, 잘못된 형태입니다. 게다가 lisa 는 « (헝겊이) 헤진, 닳은, 너덜너덜한 » 이라는 뜻의 형용사이기도 하므로, [모나 리자] 라는 말을 들으면 이딸리아 사람들은 뒤로 넘어갑니다.

한편 Gioconda 라는 말은 리자 델 죠꼰도의 성 (nom) 을 여성화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여자가 정말로 모델이었는지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저 보통 단어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gioconda, joconde 는 모두 라띠나어 jucundus [유꾼두쓰] 에서 온 말로, « 기분 좋은, 마음에 드는, 상쾌한, 매력적인 » 등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입니다. La Joconde 는 그러니까 « 매력적인 여자, (보고 있으면)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는 여자 » 라는 뜻이지요.

프랑쓰의 왕 프렁쓰와 1세 (François Ier, 1494-1515-1547) 가 이 그림을 보고 바로 그런 기분을 느꼈나 봅니다. 그는 레오나르 드 방씨가 1516년 프랑쓰로 가져 온 라 죠꽁드를 곧 사들였습니다. 그 후 이 그림은 역대 프랑쓰 왕들의 개인 보물로 전수되면서, 퐁뗀블로, 베르싸이으, 루브르, 뛰일르리 등, 왕궁을 옮겨 다니며 전시되었습니다. 현재도, 박물관이 된 루브르에 걸려 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그림이 뭐가 그리 특별난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르네썽쓰 시대부터 라 죠꽁드는 수많은 찬미와 관심, 모방과 풍자, 해석과 분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학자이자 울리삐앙에르베 르 뗄리에 (Hervé Le Tellier, 1957-) 역시 라 죠꽁드를 대상으로 하여 두 편의 책을 썼습니다. 우선 1998년 출판된 Joconde jusqu'à cent (100 까지의 죠꽁드) 는 끄노의 문체 연습을 본따, 라 죠꽁드를 99 가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책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직업, 여러 사회 신분, 계층, 나이, 유명인, 허구의 인물 등의 싯점이 포함됩니다. 99 가지 관점만이 제시되었는데도 책의 제목이 « 100 까지... » 라고 되어 있는 이유는, 책의 가장 마지막 쪽은 독자의 관점을 스스로 적도록 백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목은 발음에 의한 말장난이기도 한데, Je compte jusqu'à cent = « 백까지 세겠다 » 고 하는 표현을 Joconde jusqu'à cent 으로 바꾼 것입니다.

2002년에 새로 나온 제 2 권, Joconde sur votre indulgence 역시 비슷한 말장난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compter 는 위의 예에서처럼 « 수를 세다 » 라는 뜻의 동사이기도 하지만, compter sur 라고 하면 « -를 믿다, -에 의존하다 » 라는 뜻도 됩니다. 따라서 Je compte sur votre indulgence 는 «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믿겠습니다 » 라는 뜻인데, 역시 je comptejoconde 의 발음이 비슷한 점을 이용하여 제목을 지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1 권에 더하여, 라 죠꽁드를 바라보는 백가지의 또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유명한 그림 라 죠꽁드를 이렇게 비웃고 풍자한 것을 용서해 달라는 의미이지요.

이 두 책은 끄노의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에서 영감을 받았고, 화자의 관점에 따라 문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엄격히 말해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은 아닙니다. 때로는 같은 그림을 바라 보는 서로 다른 시선들이 다루어지기도 하나, 때로는 리자와 레오나르가 직접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무대가 르네썽쓰 시대의 피렌체이기도 하다가, 현대 빠리의 꺄페나, 문제 구역의 경찰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어 문법만 알아서는 이해가 힘들고, 문화적 상황과 맥락을 알아야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람, 시사 풍자, 인기있는 영화나 노래에 대한 암시, 말장난, 유명인들의 어투나 유행어 모방 등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 중 번역이나 긴 설명이 굳이 필요 없는 몇가지 예 :

007의 관점 (le point de vue de l'agent 007)
- Ne nous sommes-nous pas déjà rencontrés, Monsieur ?
- Cond, my name is Cond. Joe Cond.

인쇄기술자의 관점

성악가의 관점

dimanche 9 décembre 2007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작곡 기법을 글자에 적용시킨 뻬렉의 알파베가 다소 실망스러운 데가 있다면, 역시 음악을 모방하려는 노력에서 태어난 끄노의 문체 연습 (Exercices de style, 1947) 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생각으로 가득차고, 보다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문학 작품의 하나입니다.

울리뽀를 창시한 장본인이기도 한 프랑쓰의 작가 레몽 끄노 (Raymond Queneau, 1903-1976) 는 J. S. 바흐의 퓌그의 예술 (L'Art de la fugue = Dis Kunst der Fuge) 에서 영감을 받아 문체 연습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퓌그의 예술은 미완성으로 남은 바흐의 최후 작품으로써, 간단한 단선율 주제 하나를 약 스무가지 (미완성이기 때문에 출판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 의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이를 위해 바흐는 자신의 모든 기량을 쏟아 부었으며, 따라서 퓌그의 예술은 바흐의 작곡술을 총망라한, 그의 최고 걸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입니다.

끄노는 문체 연습을 통해서 비슷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극히 간단하고 평범한 이야기 — 버쓰 안에서 한 청년이 옆 승객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빈자리가 나자 그리로 가서 앉고, 몇 시간 뒤 그는 쌍-라자르 (Saint-Lazare) 역 앞에서 친구와 만나, 옷에 단추를 새로 달아야겠다는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가 아흔아홉 가지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그 중에는 간결체, 화려체, 감탄체, 의문체 등 실제로 좁은 의미에서 문체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아예 문학 졍르 자체가 바뀌기도 합니다 : 다양한 형식의 시, 희곡, 산문 등... 또는 일인칭으로 본 주관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하면, 삼인칭의 객관적인 묘사, 의학적 분석, 사전적 정의 등, 화자의 시점에 따라 문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또 화자의 국적에 따라, 외국어를 흉내낸 어투 (영어, 이딸리아어...) 도 있고, 전문 용어, 직업 용어, 은어, 속어, 욕설, 고유명사 등으로만 작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오로지 부정문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또 다른 경우에는 역순으로 이야기를 회상해 올라갑니다. 그런가하면 특정한 감각에 촛점을 맞춰, 유난히 냄새, 맛, 촉감, 시각, 청각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기도문, 공식 편지, 전보, 대화, 독백 등 다양한 문체와 어투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일정한 원칙에 따라 글자를 전환시키거나, 단어의 순서를 바꾸거나, 글자를 빼고 집어 넣는 등 울리뽀 특유의 말장난들도 등장합니다.

99가지 문체 중 대부분은 책의 한두 쪽을 차지하지만, 어떤 문체는 단지 세네줄로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 끝내는가 하면, 어떤 문체로는 똑같은 이야기가 네다섯 쪽에 이르도록 길고 상세하게 전개됩니다.

문체 연습의 몇몇 단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책의 순서와는 무관) :
  • Notations « 기록 »
  • Surprises « 놀람 »
  • Analyse logique « 논리 분석 »
  • Moi, je « 나는 말이지... »
  • Ampoulé « 과장 »
  • Désinvolte « 경박 »
  • Philosophique « 철학 »
  • Permutations par groupes croissants de mots « 증가 순에 따른 단어 교체 » (울리뽀의 말장난의 일종)
  • Antonymique « 반대말 »
  • Contre-petteries « 꽁트르뻬트리 » (글자의 위치를 바꾸는 말장난의 일종)
  • Gastronomique « 요리 »
  • Interjections « 감탄사 »
  • Ignorance « 무지 »
  • Prière d'insérer « 첨가하시오 »
  • Onomatopées « 의성어 »
  • Lettre officielle « 공식 편지 »

vendredi 7 décembre 2007

알파베 (Alphabets)

루보가 고안한 바오밥도 음악과 무관하지 않지만, 죠르쥬 뻬렉은 12음 기법을 문학에 적용시킨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간략히 설명하면, 12음 기법이란 서양 음계에 포함되어 있는 열 두 개의 음을 고르게 사용한 음악입니다. 한마디로, 도 음이 한 번 나왔으면, 다른 열 한 개의 음이 다 고르게 한번씩 나오기 전까지는 도 음은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12음 기법에 크게 매료된 뻬렉은 1976년 출판된 알파베라는 제목의 시집에서 이 원칙을 글자에 응용하려는 시도를 행했습니다.

알파베는 모두 176편의 시를 담고 있으며, 각각의 시는 열 한 개의 글자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첫번째 시 :

Satin, or bleu, trouble sain.
Rite : nous balbutions la réalité.
Nous brûlons.

Abrite la brune toison, brutalise
le bâton suri, ablutions errantes :
oubli...

언뜻 보아서는 별다른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글자를 하나하나 세어보면, 오로지 A, B, E, I, L, N, O, R, S, T, U 만이 각기 열 한 번씩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 조합은 달라집니다. 윗 시의 분석표 :

SATINORBLEU
TROUBLESAIN
RITENOUSBAL
BUTIONSLARE
ALITENOUSBR
ULONSABRITE
LABRUNETOIS
ONBRUTALISE
LEBATONSURI
ABLUTIONSER
RANTESOUBLI

영어가 편한 분들을 위한 또다른 예, 171번째 시 (176편의 시 중 유일하게 영어로 작성) :

Is only true a year in soul,
tears lyin' out at your silent relay

Is noun reality ? Sour - yes - nail out,
solitary, uneasy in our letters
(inlay, outlay) : use iron !

분석표 :

ISONLYTRUEA
YEARINSOULT
EARSLYINOUT
ATYOURSILEN
TRELAYISNOU
NREALITYSOU
RYESNAILOUT
SOLITARYUNE
ASYINOURLET
TERSINLAYOU
TLAYUSEIRON

알파베의 모든 시는 위와 같은 표를 함께 가지고 있으며, 예외 없이 모두 열 한 줄로 분석됩니다. 즉 열 한 개의 글자가 열 한 번씩 쓰인 것이지요. 저자가 왜 11 이라는 숫자를 선택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아마도 불어 알파베의 스물 여섯 자를 모두 고르게 사용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큰 문제를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12음 기법의 정신에 매우 어긋나기 때문이지요. 12음 기법은 바로 이러한 차별, 즉 몇몇 음들 만이 선호되는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운동인데, 뻬렉은 결국 일부 글자들만을 선택함으로써 12음 기법을 흉내는 냈지만, 그 가장 근본 정신은 배신한 셈입니다.

그리고 글자를 단위로 삼은 점도 실수로 보입니다. 불어처럼 유난히 묵음이 많고, 철자와 발음이 다른 언어에서, 과연 글자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실제로 소리의 균형을 이루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 차라리 음절, 또는 음소를 단위로 삼았으면 어떨까 궁금해 집니다. 또 아무리 시라고 해도, 문학에서는 의미의 문제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기에, 즉 뜻이 어느 정도라도 통하는 문장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12음 기법은 결국 문학에는 적용시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 원칙을 사용하여 176 편에 이르는 시를 쓴 뻬렉의 작업은 물론 찬미받을 만은 하나, 저 개인적으로는 알파베는 그의 다른 작품들(Le Grand Palindrome, La Disparition, Les Revenentes)에 비하여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mardi 4 décembre 2007

바오밥 (baobab)

수학자이자 작가인 쟉 루보 (Jacques Roubaud, 1932-) 가 1996년, 울리뽀를 위해 고안한 바오밥이라는 구속은 나무 바오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루보는 단지 baobab 이라는 단어가 [바] 라는 음절과 [오] 라는 음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바] 라는 소리는 불어 단어 bas (낮은) 를 연상시킵니다. [오] 라는 소리는 불어 단어 haut (높은) 를 연상시킵니다. 바오밥은 즉, 이 두 반대말 음절이 동시에 들어있는 문장을 쓰는 놀이입니다. 예 :
  • Ah, quel chaos dans le cabas. (아, 시장 바구니 안이 난장판이네.)
이 문장이 보여주듯, 단지 [오] 와 [바] 가 제대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그 앞 (또는 뒤, 또는 양쪽 모두) 음절까지 같은 경우 (윗문장에서는 [꺄]), 엄격 바오밥 (baobab strict) 이라 부릅니다. 또다른 엄격 바오밥의 예들 :
  • Il y a Othon avec son ton. Il y a Otto avec son bateau. (오똥은 막대기를 들고 있고, 오또는 배를 가지고 있다.)
  • Vas-donc, tard du tarot ! (가거라, 따로의 사생아야 !)
이 마지막 예는 더욱 놀라운 것이 [바] 와 [오] 를 양 끝에 두고 음절이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du 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거울 효과이지요.

물론 엄격 바오밥 외에 평바오밥, 또는 유연한 구속의 바오밥 (baobab ordinaire ou à contrainte molle) 도 있습니다. 이 때는 그저 두 음절을 잔뜩 집어 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바] 와 [오] 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음절, 주로 반대말, 또는 짝을 이루는 말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pou (이) 와 tique (진드기), 두 벌레의 이름을 이용한 평바오밥 :
Je voudrais partir.
Quitter
la poussière des villes frénétiques,
l’odeur épouvantable des poubelles aromatiques,
les poulaillers pathétiques
les pouddings au goût de plastiques [...]
(나는 떠나고 싶다. 광적인 도시의 먼지, 냄새나는 쓰레기통의 지독한 악취, 닭장같이 비참한 세계와 플라스틱 맛이 나는 푸딩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그리고 바오밥은 그저 혼자서 쓰고 눈으로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낭독, 또는 « 연주 »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3성으로 ! 즉 [바] 음절은 낮은 (bas) 목소리로, [오] 음절은 높은 (haut) 목소리로, 나머지 음절들은 중간 음역의 목소리로. 물론 혼자서도 목소리를 달리 하며 읽을 수 있겠지만, 이상적으로는 세 명의 서로 다른 음역의 « 연주자들 » 을 필요로 합니다. [뿌] 와 [틱] 같은 경우에도 음역을 세 사람 사이에 배분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나아가 [뿌] 를 발음하는 사람은 매번 이 (pou) 를, [틱] 을 발음하는 사람은 매번 진드기 (tique) 를 흉내낼 것이 권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오밥은 거의 음악적인 작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형식에 촛점을 많이 맞추었기에, 울리뽀의 작업과 작품들의 대다수는 음악과 자주 연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lundi 3 décembre 2007

공기 제거 (anaérobie)

울리삐앙들은 아크로님이나 빨랑드롬, 리뽀그람 (=글자 생략), 뻥그람 등 기존의 말장난들을 마음껏 활용하였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자기들이 직접 새로운 말장난을 고안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중 하나로 공기 제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 공기 제거 » 는 anaérobie 의 정확한 해석은 아닌데, 마땅한 말이 없어서 제가 그냥 그렇게 번역한 말입니다. anaérobie 의 정확한 뜻은 « 공기나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발달할 수 있는 » 이며,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입니다. 주로 미생물 따위에 관해 말해지는 전문적인 용어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불어에서 공기를 뜻하는 단어 air 는 글자 R 와 발음이 같습니다. 따라서 문맥을 모른 채 « [에르] 가 없다 » 는 말을 들으면, 산소가 모자란다는 뜻인지, 글자 R 가 빠졌다는 뜻인지 혼돈이 올 수 있지요. 이 점을 이용하여, 수학자-물리학자-작가-울리뽀 회원이었던 뤽 에띠엔 (Luc Étienne, 1908-1984) 은 아나에로비, 즉 « 에르 (air) 제거 또는 에르 (R) 제거 » 라는 구속을 만들었습니다. 이 구속에 따르면 문장을 짓되, 에르, 즉 글자 R 를 모두 빼어도 의미가 통하는 문장을 써야 합니다. 예 :

Cette rosse amorale a fait crouler le parterre. (저 무도덕한 사람이 관중을 완전히 정복했다)

이 문장에서 R 를 모두 빼면 다음의 문장이 됩니다 :

Cet os à moelle a fait couler le pâté. (저 뼈 때문에 고기 반죽에서 물이 흘렀다)

글자로 쓰여진 것만 보면, R 외에 다른 글자들도 빠졌고 (cette/cet), 또는 새로운 글자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amorale/à moelle), 아나에로비는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의 문제입니다. 발음을 해보면, 오로지 R 만 빠져나갔음이 확인됩니다. 반면, couler 에는 여전히 R 가 붙어 있는데, 이 역시 croulercouler 건, 마지막 R 는 어차피 묵음이기 때문에, 발음상으로는 R 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해서 얻어진 새로운 문장을 첫 문장의 아나에로비라고 부릅니다. 또는 그 역도 가능합니다. 즉 R 가 없던 문장에 R 를 잔뜩 집어 넣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이죠. 이 작업은 aération, 즉 « 환기 » 라고 부릅니다.

한편 아나에로비에는 몇가지 변형이 있습니다. 공기를 제거하는 대신, 날개를 잘라내거나, 차를 금지시킬 수도 있는 것이지요. 날개 (aile) 를 잘라낸다는 것은 글자 L [엘] 을 빼는 행위이며, 차 (thé) 를 못마시게 하는 것은 글자 T [떼] 를 지우는 것입니다.

dimanche 2 décembre 2007

아크로님 (acronyme)

울리삐앙들이 즐기는 말장난 중 하나는 아크로님 만들기입니다. 아크로님은 머릿글자들만 모아서 만들어진 약칭이되, 보통 단어들처럼 읽고 쓰이는 단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Oulipo =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아크로님은 씨글 (sigle) 의 일종인 동시에 씨글과 구별됩니다. sigle 은 머릿글자들을 따서 만들어진 약칭을 보다 포괄적으로 총칭하는 말로, 예를 들면,
  • SNCF = 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 = 프랑쓰 국립 철도청
  • RATP = Régie Autonome des Transports Parisiens = 빠리 지하철 공사
등입니다. 이 두 예에서 보다시피 씨글은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고, 읽을 때도 그저 철자 이름을 차례차례 읽는 수 밖에 없지요. 원래, 약자 뒤에는 마침표를 찍는 것이 원칙이나 (S. N. C. F.), 지금은 점점 더 생략하는 추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씨글은 성수의 변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크로님은 씨글을 만들어 놓고 보니, 자음과 모음이 적절하게 섞여, 일반 단어처럼 읽을 수 있게 된 경우입니다. 예 :
  • ovni = Objet Volant Non-Identifié = 미확인 비행 물체
  • sida = Syndrome d'Immuno-Déficience Acquise = 후천성 면역 결핍증

이 두 예에서 보다시피 아크로님은 소문자로도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대문자로 쓰다가도 (SIDA, OVNI),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보니, 아예 일반 단어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아크로님들 중에는 성수의 변화를 받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un ovni, des ovnis)

심지어 어떤 아크로님들은 그 자신이 어원이 되어 파생어들을 낳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Salaire Minimum Interprofessionnel de Croissance 는 « 최저임금 » 이란 뜻인데, 너무 길어서 약호화 시켜 놓고 보니, SMIC 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S. M. I. C. 으로 표기하고 따로 끊어 읽기도 했지만, 곧 자연스럽게 [스믹] 이라 읽게 되었으며, 표기도 SMIC 또는 smic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smicard(e), 즉 «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 (여자) »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크로님이라고 해서 모두 일반 명사화되고, 모두 소문자로 쓰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OTAN = Organisation du Traité de l'Atlantique Nord = « 북대서양 조약 기구 » 는 항상 [오떵] 이라고 읽는 아크로님이지만, 모두 대문자로 표기하거나, 최소한 첫자는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Otan). 즉 고유명사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지요.

ONU = Oraganisation des Nations Unies = « 국제 연합 » 도 비슷한 예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모두 대문자로만 쓰며, 때로는 아크로님으로, 때로는 씨글로 취급됩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오뉘] 라고 읽는가하면, 또다른 사람들은 [오. 엔. 위] 라고 발음합니다.

사실 어떤 단어가 씨글로 남아있고, 어떤 단어가 아크로님으로 변모하는가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용 (특히 언론에서) 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DEA = Diplôme d'Études Approfondies = « 박사 과정 수료 학위 » 는 [데아] 라고 발음될 수 있고, 복수형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항상 대문자로만 쓰며, [데. 으. 아] 라고 끊어 읽고, 복수일 때도 s 가 붙지 않습니다.

요즘은 점점 더 기업, 단체, 상품명 등이 자연스러운 단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첫자 외에 몇몇 다른 글자들을 집어 넣는 경향이 있는 듯 보입니다. 또다시 울리뽀를 예로 들면, 엄격하게 따져서 이것의 약자는 OLP 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오.엘.뻬] 라 읽히는 멋대가리 없는 말이 되니까, 첫자만 뽑는 대신, 아예 첫음절을 모아 Oulipo 라는 말을 만든 것이지요.

vendredi 30 novembre 2007

울리뽀 (OuLiPo)

실종 (La Disparition) 이나 돌아온 여자들 (Les Revenentes) 같은 특이한 작품은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만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울리뽀의 일원이었는데, 이 문학 모임의 회원들은 모두 형식적 구속을 받는 작품들을 쓰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OuLiPo 라는 말은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잠재적 문학의 작업장) 의 첫자들을 따서 만들어진 말로, 1960년, 작가 레몽 끄노 (Raymond Queneau) 와 수학자 프렁쓰와 르 리요네 (François Le Lionnais) 에 의해 창설된 후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문학 운동입니다. 그 회원은 oulipien 이라 불리는데, 유명한 울리삐앙으로는 두 창설자를 비롯하여 죠르쥬 뻬렉, 이딸로 깔비노 (Italo Calvino), 쟉 루보 (Jacques Roubaud), 베르나르 쎄르낄리니 (Bernard Cerquiglini) 같은 작가, 수학자, 언어학자 등을 꼽을 수 있지만, 그외에도 대중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들도 있고, 몇몇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전반적인 수는 창설 이래 지금까지 총 서른명 정도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울리삐앙의 목록. 이들 중 일부는 이제 죽고 없지만, 울리뽀는 일단 가입하면 절대 탈퇴가 안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들도 여전히 회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기 모임에 나오지 않아도 너그러이 용서해 준다는군요.^^

울리삐앙들은 모두 특이한 형식, 말장난, 수학 공식, 복잡한 틀 등을 적용시킨 문학 작품을 쓰는 것을 즐깁니다. 그들은 이러한 구속이 더욱 상상력을 발휘시킨다고 생각하며, 형식적 제한을 받으면서도 내용이 제대로 성립되는 글을 쓰는 것을 문학적 도전으로 삼습니다.

울리뽀는 여러 비슷한 모임을 낳았습니다. 예를 들면,
  • 울리뽀뽀 (OuLiPoPo) = Ouvoir de Littérature Policière Potentielle = 잠재적 추리 문학의 작업장
  • 우빵뽀 (OuPeinPo) = Ouvoir de Peinture Potentielle = 잠재적 미술의 작업장
  • 우트라뽀 (OuTraPo) = Ouvoir de Tragicomédie Potentielle = 잠재적 희비극의 작업장

그외에도,

  • 우뮈뽀 (OuMuPo) = Musique = 음악
  • 울리트라뮈뽀 = OuLiTraMuPo = Littérature Traduite en Musique = 음악으로 번역된 문학
  • 우바뽀 (OuBaPo) = Bande dessinée = 만화
  • 우그라뽀 (OuGraPo) = Grammaire = 문법
  • 우이스뽀 (OuHisPo) = Histoire = 역사
  • 우마뽀 (OuMaPo) = Marionnette = 인형극
  • 우포뽀 (OuPhoPo) = Photographie = 사진
  • 우씨뽀 (OuCiPo) = Cinématographie = 영화
  • 우라뽀 (OuRaPo) = Radio = 라디오
  • 우앙뽀 (OuInPo) = Informatique = 컴퓨터
  • 우뽈뽀 (OuPolPo) = Politique = 정치
  • 우뀌이뽀 (OuCuiPo) = Cuisine = 요리
  • 우쟈뽀 (OuJaPo) = Jardinage = 정원가꾸기
등등.

그리고 이 모든 모임들을 통칭하여 우익쓰뽀 (OuXPo) 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X 는 변수로서, 위에서 보다시피 각 분야의 첫음절로 대치되는 것이지요.

mercredi 28 novembre 2007

돌아온 여자들 또는 글자들 (Les Revenentes)

글자 e 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완성한 소설, 실종 (La Disparition) 으로부터 몇 년 뒤 (1972), 뻬렉 (Georges Perec) 은 자신이 e 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여, 이번엔 오로지 e 만 사용한 소설을 썼습니다. 즉, a 도, i 도, o 도, u 도, 이 소설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y 은 반모음/반자음이기 때문에, 드물게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돌아온 여자들. 실종처럼 제목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 하나는 소설의 내용에 등장하는 오랫만에 돌아온 여자들을 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e 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 글자 » 는 LA lettre, 즉 여성이기 때문에). 그 시작의 일부 :

Telles des chèvres en détresse, sept Mercedes-Benz vertes, les fenêtres crêpées de reps grège, descendent lentement West End Street et prennent sénestrement Temple Street vers les vertes venelles semées de hêtres et de frênes près desqelles se dresse, svelte et empesé en même temps, l'Évêché d'Exeter. Près de l'entrée des thermes, des gens s'empressent. Qels secrets recèlent ces fenêtres scellées ?

역시나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뻬렉이 간혹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발음만 같으면 글자를 바꾸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단 제목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원래 정확한 철자대로 쓰자면 Les Revenantes 여야 하는데 이것을 Les Revenentes 로 바꾼 것이지요. 발음은 두 경우 모두 [레 르브넝뜨] 라고 되기 때문. 그 외에도 위의 예문에서도 보면, desqellesqels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들도 원래는 각각 desquellesquels 이어야 합니다. 다른 서양 언어들에서도 비슷하지만, 불어에서도 u 가 뒤따르지 않는 q 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그런데 불어에서는 qu 가 들어가는 단어가 매우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기를 약호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종에 비해서는 반 밖에 안되는 부피이지만 (140쪽), 그래도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엔 글자 하나가 아니고 네 개나 뺏으니까요 !

mardi 27 novembre 2007

출현 (apparition)

e 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쓰여진 뻬렉의 소설 실종 (La Disparition) 은 간혹 좀 특이한 단어나 잘 안쓰는 표현들이 억지스럽게 나오는 감도 없지 않으나,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매우 유연하게 쓰여져, 읽다 보면 어느새 e 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그저 보통 책처럼 자연스럽게 읽지 않고, 눈에 불을 키고 e 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장난기 많은 뻬렉이 몰래 e 를 하나 숨겨두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도적이 아니었더라도 실수로 e 가 들어간 말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들이 이 책과 뻬렉에 대한 관심이 넘쳐난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인지, 아무튼 이 실종된 e 찾기는 1969년 책이 출판된 이후, 세대를 넘어 가면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고, 사람들은 뻬렉의 천재성에 감탄하거나, 아니면 순전히 무의미한 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폄하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2003 년에 드디어 e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해 4월에 걀리마르 (Gallimard) 사에서 재판되어 나온 실종 의 119 쪽, 위에서 네번째 줄, 왼쪽에서 두번째 단어에 분명히 e 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 이 네번째 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

« Booz dorme non loin du grain qu'on amassait »
(보즈는 우리가 줍던 곡식알 가까에서 잔다)

그런데 여기서 이 dorme 라는 단어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dormir (잠자다) 라는 동사가 접속법 현재 3인칭 단수로 쓰인 것인데, 문맥과 문장 구조상 여기서는 접속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의 조사에 나선 뻬렉의 추종자들은 원문은 dormait 라고, 즉 e 가 없는 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dormaitdormir 동사의 직설법 반과거 3인칭 단수로, 해석은 « 자고 있었다 » 가 되며, 그래야 문맥에도 맞고 문법에도 맞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전 판본들을 보아도 쉽게 확인되는 것이고, 심지어 2003년 재판되어 나온 책들 중에도 dormait 라고, 원문대로 잘 찍혀 있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즉, 재판본들 중에서도 일부 권수에만 오자가 난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실수, 장난, 기적 ? 우선, 현대의 인쇄 기술상 이런 식의 실수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고의적인 장난일 확률이 가장 많은데, 사람들은 제일 먼저 걀리마르 출판사를 의심했습니다. 일부러 이런 소란을 일으켜서 책을 많이 팔고자 하는 속셈 아닐까 하는 것이죠. 그런데 걀리마르사는 이 사건에 대해 정말로 놀라면서, 그러한 상업적 계획이 없음을 진심으로 맹세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인쇄소에 의심이 돌아갔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이야 어디서 왔건, 실질적으로는 인쇄 과정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잘 돌아가고 있던 기계를 잠시 멈추고, 문제의 글자를 바꿔 놓은 다음, 다시 기계를 돌리다가, 또 슬쩍 멈추고는, 글자를 다시 원래대로 수정해 놓고는 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이지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인쇄소 직원인지, 아니면 출판사 직원인지, 아니면 몰래 침입한 제 삼 자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혼자 생각으로 저지른 일인지, 출판사에서 내려온 비밀 방침을 따른 것인지, 등등은 정말로 심각하고 본격적인 수사가 있어야 밝혀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 아무도 그렇게까지 파해칠 마음은 없었나 봅니다. 대신 출판사는 오자가 난 판본들을 가능한 한 모두 거둬들여 파본시키기로 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일하게 e 가 찍힌 실종 판은 모두가 찾아 헤매는 희귀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책의 본문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거의 의식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책의 표지에 e 가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바로 저자의 이름 중에 : Georges Perec. 게다가 이 책은 imaginaire 라는 이름의 총서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까지 치면 다섯 번이나 등장하는 셈입니다. (옆에 그림에는 제목이 안 보이는데, 제목이 흰색 바탕에 흰색 글자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책을 손에 들고 봐도 잘 안 보입니다.)

lundi 26 novembre 2007

실종 (La Disparition)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대회문 (Le Grand Palindrome) 을 비롯하여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실종 (La Disparition, 1969)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실종된 인물을 찾는 일종의 탐정-추리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책의 제목에는 또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름아닌 글자 e 의 실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 삼백여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단 한번도 e 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문장들에서 e 자만 빼고 인쇄한 것이 아니라, e 가 들어있는 단어 자체를 작가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서양 언어에서나 e 라는 모음은 많이 쓰이겠지만, 불어에는 유난히 e 가 들어간 단어가 많습니다. 그리고 e 는 문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애초에는 e 가 없던 단어에도, e 를 첨가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동사의 시제를 변화시킬 때, 발음을 구별해야 할 때, 여성형을 만들 때, 등등. 따라서 e 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휘의 선택과 활용을 극도로 제한하겠다고 작가가 스스로에게 구속을 거는 것입니다. 뻬렉은 이러한 형식적인 틀에 구속을 받으면서도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다음은 그 중 한 문단 :
Il fut bon pour l'oto-rhino, un gars jovial, au poil ras, aux longs favoris roux, portant lorgnons, papillon gris à pois blancs, fumant un cigarillo qui puait l'alcool. L'oto-rhino prit son pouls, l'ausculta, introduisit un miroir rond sous son palais, tripota son pavillon, farfouilla son tympan, malaxa son larynx, son naso-pharynx, son sinus droit, sa cloison. L'oto-rhino faisait du bon travail, mais il sifflotait durant l'auscultation ; ça finit par aigrir Anton.

보다시피 e 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한 문단만 해도 정말 대단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삼백쪽이나 계속되니, 그저 놀랍고 신기할 수 밖에 ! 어떻게 e 를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도 이리 교묘하게 문장을 만들어 나갈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따름입니다.

dimanche 25 novembre 2007

회문 (palindrome)

그리쓰어에서 온 접두사 palin- 은 « 다시 »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접두사는 불어에 별로 많은 어휘를 낳지는 않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단어 하나는 palimpseste. palin- + psân (긁다) 이라는 동사의 과거분사로 구성된 이 말은 « 다시 긁어낸 (필사본) » 이라는 뜻.

또다른 잘 알려진 단어로 palindrome 이 있습니다. palin- + drome 으로 구성된 이 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은 다음,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다시 읽어도 똑같은 형태와 의미를 유지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지칭합니다. 방금 달려온 길을 거꾸로 다시 (palin) 달려가는 (drome) 행위에 비유한 것이지요. 불한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 회문 » 이라고 한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듣는 말이지만, 아마도 회전하는 문장이라는 뜻인 듯.

회문은 그저 개별적인 단어일 수도 있지만 (예 : ressasser, Éve), 대개는 짤막한 문장들입니다 :

À l'étape épate-la. (그 단계에서 그녀를 놀래켜라.)
Eh ! ça va, la vache ? (야, 암소는 잘 지내냐 ?)
L'ami naturel ? le rut animal. (자연스런 친구 ? 동물적인 발정.)

이 세 빨랑드롬은 말장난을 좋아했던 프랑쓰의 작가 루이즈 드 빌모랑 (Louise de Vilmorin, 1902-1969) 의 창작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또 벨직의 작가 루이 스뀌뜨네르 (Louis Scutenaire, 1905-1987) 의 회문 하나 :

La mère Gide digère mal. (지드 할멈은 소화를 잘 못시킨다.)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프랑쓰의 작가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1969년에 Le Grand Palindrome 이라는 제목의, 엄청나게 긴 회문을 발표했습니다. 1247 개의 단어와 5566 글자로 구성된 이 문장은 아마도 가장 긴 (최소한 불어로 된 것들 중에서는) 빨랑드롬일 것입니다. 그 시작과 끝 :

Trace l'inégal palindrome. Neige. Bagatelle, dira Hercule. Le brut repentir, cet écrit né Perec. L'arc lu pèse trop, lis à vice-versa. Perte. Cerise d'une vérité banale, le Mälstrom, Alep, mort édulcoré, crêpe porté de ce désir brisé d'un iota...

...à toi, nu désir brisé, décédé, trope percé, roc lu. Détrompe-la. Morts : l'Âme, l'Élan abêti, revenu. Désire ce trépas rêvé : Ci va ! S'il porte, sépulcral, ce repentir, cet écrit ne perturbe le lucre : haridelle, ta gabegie ne mord ni la plage ni l'écart.

전문을 감상하려면 여기로.

samedi 24 novembre 2007

양피지 (parchemin)

베르가못에 이름을 준 베르가마 시는 서양 문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또다른 물체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 parchemin. 우리말로 « 양피지 » 라고도 번역하는 빠르슈망은 꼭 양 뿐만 아니라, 소, 염소, 송아지, 돼지 등의 가죽에 필요한 처리를 가해 종이처럼 사용하던 재질입니다.

언뜻 보면 parchemin Bergama 두 단어 사이에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베르가마의 옛 이름은 불어로 Pergame, 라띠나어로 Pergamum, 그리쓰어로 Pergamon 이었습니다. 고대 소아시아에는 지금의 베르가마를 수도로 한 뻬르감 왕국이 크게 번성했었습니다. 양피지도 기원전 2세기 무렵 거기서 발명되었거나, 또는 그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는 그리쓰어로 pergamênê, 라띠나어로 pergamena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훗날 불어에서 parchemin 이라는 형태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도서관들에 보관되어 있는 중세의 필사본들 중에는 양피지로 된 것이 종이로 된 것보다 월등히 많은데, 이것은 종이가 귀하기도 했었지만, 종이로 된 책들은 세월의 흐름에 살아 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종이의 사용이 보편화 된 후로도, 중요한 공식 문서들은 여전히 양피지에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양피지라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니죠. 양피지 필사본들도 그 보관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많은 도서관들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사본을 만져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 필름화 되었거나 전산화 된 형태로 열람할 수 밖에는 없지요. 빠르슈망 필사본을 몇번 만져볼 기회가 있었던 제 경험에 의하면 그 느낌이 상당이 특이합니다. 약간 고무 같기도 하고, 플라스틱 같기도 하고... 그리고 눈으로만 보면 알기 어렵지만, 손으로 만져 보면 어느 쪽이 털이 있던 쪽이고, 어느 쪽이 살이 있던 쪽인지 감이 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필사본의 정체와 구성 등을 판단하는 데에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빠르슈망 중에서도 특히, 죽어서 태어난 송아지, 또는 갓 태어난 송아지의 가죽으로 만든 것은 vélin 이라 부릅니다 (veel = « 송아지 » 를 뜻하는 옛 불어). 벨랑은 보통 빠르슈망에 비하여 훨씬 희고, 얇고, 섬세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다 고급스런 벨랑을 만들기 위해 심지어는 아직 태아 상태의 송아지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빠르슈망은 매우 비싼 재료였지요. 중세의 책은 그래서 아무나 손에 들고 읽던 것이 아니라, 부자들만 소유하고, 잘 모셔두는 귀중품이었습니다. 때로는 새로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백지 빠르슈망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이전의 책을 다시 이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더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빠르슈망을 물에 빨고 박박 긁어, 원래의 글자를 지우거나 희미하게 한 후, 새로운 내용으로 덮어 쓴 것입니다. 이러한 필사본을 palimpseste 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쓰말로 « 다시 긁어낸 ». 지웠다고는 해도 자국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빨랑쎄스뜨들은 읽기가 더 힘듭니다.

jeudi 22 novembre 2007

베르가못 (bergamote)

베르가못은 살이 매우 부드럽고 향기가 새콤한 배 (과일) 의 일종으로, 불어 bergamote 은 이딸리아어 bergamotta 로부터 왔습니다. 비록 이딸리아를 통해 이름이 널리 전파되긴 했지만, 베르가못은 이딸리아의 도시 베르가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대신 뛰르끼 (Turquie) 의 도시 베르가마 (Bergama) 가 이 과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Perse 에서 온 과일을 pêche (복숭아) 라 부르듯이, Bergama 에서 온 과일은 bergamote 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확실한 어원은 아니고, 진짜 어원은 뛰르끼어 beg armâdé 라는 설도 있습니다 (beg = « 주인, 나리, 영주... » + armâdé 또는 armûdî = « 배 »). 어느 설이 더 정확한지는 이제 판단하기 어렵게 돼버렸지만, 아무튼 이 과일이 뛰르끼로부터 서유럽에 도입된 것은 맞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베르가못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과일, 즉 귤의 일종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귤은 베르가못 배와 모양과 향기가 비슷해서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불어에서는 구별 없이 la bergamote 이라는 말 밖에는 쓰이지 않지만, 이딸리아어에서는 la bergamotta 라고 하면 오로지 배를, il bergamotto 라고 하면 배와 귤을, 하지만 주로 귤을 가리킵니다. 신맛이 매우 강한 이 귤은 과일로서 먹기 보다는 그 향만 축출하여 다른 데에 사용합니다 : 차, 사탕, 향수...

mercredi 21 novembre 2007

멜바 복숭아 (pêche Melba)

뻬슈 멜바는, 설탕물에 졸인 복숭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산딸기즙을 끼얹고, 크렘 셩띠이와 아몬드 조각 등으로 장식한 후식입니다.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요리법을 보아하니 쁘와르 벨-엘렌과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배를 복숭아로, 쵸콜렛을 산딸기즙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될 듯 싶습니다.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은 pêche Melba 라는 이름은 절반은 지명에서, 다른 절반은 인명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pêche. « 복숭아 » 를 뜻하는 불어 pêche 는 라띠나어 persicum 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 뻬르쓰의 » 라는 뜻입니다. 왜냐면 복숭아는 뻬르쓰 (현재의 이란) 로부터 유럽에 도입되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persicum pomum (뻬르쓰의 과일) 이라고 불리웠는데, 차차 뒷부분이 떨어져나가 persicum 이라고만 해도 이 과일을 뜻하게 되었고, 이 단어가 발전하여 불어에서는 pêche, 이딸리아어에서는 pesca 가 되었습니다. peach 는 불어를 영어화시킨 말이구요.

다음으로, Melba 는 19세기 말 유명한 성악가였던 넬리 멜바 (Nellie Melba, 1859-1931) 를 가리킵니다. 뻬슈 멜바는 바로 이 사람을 위해 프랑쓰의 요리사 오귀스뜨 에스꼬피에 (Auguste Escoffier, 1846-1935) 가 발명한 후식이었던 것입니다 (1892년 런던에서).

그런데 더 파고 들어가면, Melba 역시 인명이 아니라 지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Nellie Melba 는 사실 예명일 뿐이고, 이 가수의 본명은 Helen Mitchell 인데, 호주 출신인 그녀는 도시명 Melbourne 을 이용하여 예명을 지었던 것입니다.

mardi 20 novembre 2007

마요네즈 (mayonnaise)

여러 차례 보았듯 (베샤멜, 프랄린, 싸바랑, 꺄르빠쵸, 빠르멍띠에, etc.), 새로운 요리법이 발명되었을 때는 그와 관련된 인명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은데, 크렘 셩띠이의 경우는 지명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마요네즈가 있습니다.

mayonnaise 의 어원은 아주 확실하지는 않은데, 가장 널리 퍼져 있고, 대부분의 어학 사전들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는 설은 메노르까 (Menorca, ou en fr. Minorque) 섬의 수도 마온 (Mahón) 항의 이름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지중해의 섬 메노르까는 현재는 에스빠냐 영토이지만, 역사를 통해 여러 차례 에스빠냐와 영국, 프랑쓰 사이의 분쟁 대상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처음 이 섬에 손을 댄 것은 에스빠냐 왕위 계승 전쟁 중으로, 1708년, 에스빠냐 + 프랑쓰 연합군은 메노르까를 영국인들에게 빼앗깁니다. 영국인들의 지배는 그 후로 거의 오십년간 지속되다가, 1756년 프랑쓰는 마온 항을 영국인들로부터 다시 빼앗습니다. mayonnaise 라는 이름은 바로 이 때 기원했을 확률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요네즈가 정말로 마온 사람들만이 먹던 쏘쓰였는데, 이 기회에 프랑쓰로 수입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프랑쓰에도 알려져 있던 쏘쓰에 이 때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러한 이름을 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튼 처음에는 mahonnaise 라는 표기만이 쓰였습니다. Mahón 에 해당하는 불어 형용사가 mahonnais 인데, sauce 는 여성 명사이므로 그것을 꾸미려면 mahonnaise 가 됩니다. la sauce mahonnaise (마온의 쏘쓰), 또는 la sauce à la mahonnaise (마온식 쏘쓰). 그러던 것이 차차 변형되어 1807년 이후로는 mayonnaise 라는 형태로 굳혀졌습니다.

lundi 19 novembre 2007

크렘 셩띠이 (crème chantilly)

베르나르 르와조보다 수백년 전에, 비슷한 이유로 자살한 프렁쓰와 바뗄 (François Vatel, 1631-1671) 이라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푸께 (Nicolas Fouquet) 와 꽁데 (Louis II de Bourbon, prince de Condé) 같이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갖춘 인물들을 차례로 섬긴 바뗄은 후자의 밑에서 일하던 중, 왕 루이 14세를 비롯하여 많은 귀족들이 초대받은 큰 잔치를 주관하게 됩니다. 이 잔치는 삼일낮-삼일밤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으므로, 몇몇 문제들이 생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나, 아마도 완벽주의자였던 바뗄은 별것 아닌 실수에도 큰 스트레쓰를 받았나 봅니다. 특히 둘째날, 물고기의 배달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그는 요리사로서의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갔다고 비관하여, 잔치가 한창이던 중 자살했습니다.

이 잔치는 꽁데 가문의 소유인 빠리 근처의 셩띠이 성 (château de Chantilly) 에서 치루어졌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바뗄이 크렘 셩띠이를 발명한 것도 이 성에서라고 합니다. 크렘 셩띠이는 설탕과 향 등을 섞어 거품을 낸 크림으로, 주로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의 장식에 쓰이거나, 다른 과자의 밑받침 재료로 들어가기도 하고, 과일 (주로 딸기, 산딸기...) 과 곁들여 먹기도 합니다. 크렘 셩띠이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차디 차야 합니다. 그래서 크림 자체는 물론, 그릇과 거품기도 냉장고에 미리 넣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는 아예 냉동실에). 그리고 크림에 얼음 가루를 섞으면 좀 더 성공의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지요.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큰 차이는 확인 못했습니다. 얼음을 섞으나 안 섞으나 저는 자주 실패하게 되더라구요.^^ 또 어떤 사람들은 전기 거품기를 쓰면 열이 나기 때문에, 팔 힘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데, 솔직히 팔로 저으면,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저어도 크림이 부푸는 기미조차 안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간혹 다 만들어진 것을 사기도 합니다. 파는 것들은 방부제가 섞여 있고, 많이 달지만, 훨씬 편리한 점은 부인할 수가 없지요. 아니면 보온병처럼 생긴 셩띠이 만드는 기구도 있습니다. 이런게 있으면 집에서 크림을 담아서 흔든 후 짜내기만 하면 되므로, 저도 언젠가 장만해 볼 생각입니다.^^

집에서 만든 셩띠이로 장식해 본 치즈 케익 (왼쪽 사진) 확실히 파는 것만 못합니다, 흑흑 (오른쪽)


dimanche 18 novembre 2007

미슐린 (micheline)

(여전히 파업 중인) 빠리의 지하철은 모두 열 네 개의 노선이 있는데, 그 중 대부분은 특이하게도 타이어 (pneu) 를 가진 기차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기차, 즉 철로 위를 달리되 고무 바퀴를 가진 기차를 불어로 micheline 이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은 그 제조 회사인 미슐랑 (Michelin) 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빠리의 지하철 (métro parisien)
오늘날도 번성하고 있는 타이어 회사, 미슐랑은 엉드레 (André Michelin, 1853-1931) 와 에두아르 (Édouard Michelin, 1859-1940) 두 미슐랑 형제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1889). 이들은 타이어 자체를 발명하지는 않았지만, 바퀴 철체는 그대로 두고 그것을 둘러싼 고무 만을 바꿔낄 수 있는, 즉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분리식 타이어 (pneu démontable) 를 발명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타이어에 구멍이 나면 바퀴 전체를 통째로 갈아야 했다고 합니다. 특허권을 획득한 미슐랑 형제의 타이어는 처음에는 자전거에 (1891), 다음에는 마차 (1894) 와 자동차에 (1895), 그리고 마침내 기차 (1932) 에 적용되었습니다.

미슐랑 타이어를 사용하는 자동차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라는 의미에서, 미슐랑 사는 1900년부터 관광 안내서 (guide Michelin) 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빨간색 표지 때문에 Guide Rouge, 즉 « 빨간 안내서 » 라고 불리는 책은 매우 유명하긴 하지만, 실은 관광 안내서라기 보다는 식당 (과 호텔) 안내서입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안내서들과 잡지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드 미슐랑은 이 분야에서 절대적인 잣대로 여겨져, 그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이 책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크나큰 명예이며, 더군다나 높은 별점을 받는다면 (별 세 개 만점), 그것은 부와 명성의 지름길이지요. 그런가하면, 별을 잃거나 책에서 이름이 사라지면, 이것은 모욕과 수치와 파산의 대명사로 간주되어, 유명한 요리사들은 여기에 거의 목숨을 걸고 삽니다. 실제로 몇년 전 베르나르 르와조 (Bernard Loiseau) 라는 유명한 요리사는 수년째 별 세 개를 받다가 별 두 개로 줄었다고 자살을 했습니다. 프랑쓰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이 사건으로 인해, 기드 미슐랑을 비롯한 몇몇 식도락 평론서들의 횡포와 비리, 요리사들이 겪어야 하는 압력 등에 대해 한동안 논쟁이 많았는데, 여전히 매년 새 기드 미슐랑이 출판되면 과연 누가 별 세개를 받았나, 유지했나, 잃었나 크게 보도가 되곤 합니다. 프랑쓰 전체의 식당 중 별 세 개를 받는 식당의 수는 (매년 달라지지만) 대략 스무 개 전후.

jeudi 15 novembre 2007

싸보따쥬와 보이꼿 (sabotage et boycott)

때때로 파업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도 하는 sabotage 는 의도적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 말은 saboter 동사에서 비롯되었고, saboter 는 19세기에 공장 등에서 기계 장치에 sabot, 즉 « 나막신 » 을 슬쩍 끼워 넣어, 고장을 유발한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소한 기계가 수리될 때까지는 아무도 일을 못하게 했고, 동시에 고용주에게 압력을 가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진짜 나막신을 기계에 집어 넣는 행위는 없거나 드물지만, sabotersabotage 는 여전히 자주 쓰이는 어휘입니다. 꼭 노동 분쟁이 아니더라도 남의 작업에 훼방을 놓는 경우, 또는 자기 스스로의 작품이나 업무라도 아무렇게나 처치해 버리는 경우에 이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싸보따쥬와도 다르고 파업과도 다르지만 보이꼿 역시 불만을 표시하는 수단입니다. 오늘날 보이꼿은 어떤 기업이나, 단체, 나라, 개인 등이 제공하는 물건이나 행사, 생각 등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최초의 보이꼿은 파업처럼 시작되었습니다. 아일랜드의 부유한 농장주 찰쓰 보이콧 (Charles Boycott, 1832-1897) 은 그의 농부들을 험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결국은 참다 못한 농부들이 1879년에 보이콧을 위해 일하기를 단체로 거부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Boycott 의 이름은 영어의 보통 명사가 되었고, 불어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불어에서는 또한 같은 의미로 boycottage 라는 단어도 쓰이고, boycotter 라는 동사도 있습니다.

mercredi 14 novembre 2007

파업 (grève)

오늘부터 프랑쓰 전국이 대규모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기차, 지하철, 버쓰, 전기, 가스, 교사, 학생, 법원 등이 참여하고, 곧이어 모든 분야의 공무원들에 의해 뒤를 이을 이번 파업은 무기한입니다. 대부분의 공공 업무를 « 개혁 »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때문인데, 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개혁이라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절대 자신들의 권리를 양보할 마음이 없으며, 정부는 정부대로 눈꼽 만큼도 협상을 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채 밀어 부치고 있기 때문에, 두 파의 힘겨루기는 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십여년 전에도 같은 문제로, 같은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한 달 반 동안 프랑쓰 전체가 마비되는 파업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 그 해 겨울,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아무튼 « 파업 » 은 불어로 grève 라 하는데, 이 말은 고유 명사, place de Grève (그레브 광장) 로부터 왔습니다. 그레브 광장은 빠리 시청 앞의 광장으로, 옛부터,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이 광장에 모여, 일감이 생기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광장은 쎈 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배가 도착하면 일손을 고용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지요. 이 행위를 faire Grève, être en Grève 라 했고, 처음에는 글자 그대로 «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그레브 광장에 모이다 » 라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뜻이 발전하여, 오늘날 같은 표현을 쓰면, « 의도적으로 일을 중지하다, 파업하다 » 라는 의미가 되었고, la grève 라고 하면 « 파업 » 이라는 보통 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레브 광장의 이름은 보통 명사 grève (모래사장) 로부터 왔습니다. 방금 말했듯, 빠리 시청은 쎈 강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에, 그 앞에는 파도가 몰아온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 모래밭 광장 (place de grève) » 이라 불리던 이 광장의 이름이 아예 고유 명사화 되어 « 그레브 광장 (place de Grève) » 이 되었습니다. place de Grève 라는 이름은 1806년까지 사용되다가, 그 때 이후로는 place de l'Hôtel de Ville (시청 광장) 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둑이 쌓이고 도로 포장이 되어, 강물과는 닿지 않고 모래나 자갈도 전혀 없는 광장이지요. 하지만 빠리-해변 철에는 일부러 모래를 깔아 해변처럼 만들기도 하고, 겨울에는 얼음을 깔아 스케이트 장으로 변모시키기도 합니다.

빠리 시청 (Hôtel de Ville de Paris)

lundi 12 novembre 2007

비행선 또는 제쁠랑 (dirigeable ou zeppelin)

더운 공기를 사용하건 (montgolfière), 가스를 사용하건 (charlière), 또는 혼합된 유형 (hybride) 이건, 기구들은 수직으로 상승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하늘에 떠오른 다음에는 방향의 조종이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몽골피에르 매우 초창기부터 있어왔는데, 예를 들어, 영불해협을 최초로 횡단한 졍-삐에르 블렁샤르 (Jean-Pierre Blanchard, 1753-1809) 는 나쎌 (nacelle = 풍선 밑의 바구니) 에 날개와 꼬리키를 달기도 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방법은 극히 제한된 수단에 불과했고, 몽골피에르들은 바람의 영향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이미 1783년에 기하학자였던 졍-바띠스뜨 므니에 들 라 쁠라쓰 (Jean-Baptiste Meusnier de la Place, 1745-1793) 는 몽골피에르의 성공을 보면서, 동그란 풍선 대신 길죽한 타원형의 풍선에 바람개비 모양의 추진기를 달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때때로 비행선의 발명자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그의 생각은 계획 단계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최초의 비행선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1852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해 9월에 엉리 지파르 (Henri Giffard, 1825-1882) 는 옆으로 누운 타원형의 긴 풍선에 수증기를 이용한 일종의 모터와 추진기를 달아 빠리와 트랍 (Trappes) 사이를 여행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조종 가능한 몽골피에르였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몽골피에르를 불어로는 dirigeable, 또는 ballon dirigeable 이라 부릅니다. 말그대로 « 조종 가능한 (풍선) ».

디리쟈블이 프랑쓰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그 전성기는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Ferdinand von Zeppelin, 1838-1917) 에 의해서 달성되었습니다. 군인이자 기술자였던 체펠린은 1900년, 자기 이름을 딴 디리쟈블 공장을 차려, 아예 대량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체펠린 사의 디리쟈블은 20세기 초반 동안 크게 번성했고, 특히 1차 대전 동안에는 군대에 압수되어 폭격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체펠린은 거의 디리쟈블의 대명사가 되었고, 불어에서도 zeppelin [제쁠랑]dirigeable 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보통 명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제쁠랑 또는 디리쟈블은 광고용, 홍보용, 관광용, 또는 감시용으로 때때로 쓰이고 있습니다.

벌써 몇년 전, 우리집 창문 위를 날아가던 디리쟈블. 신기해하며 좋아라고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보니 시민 감시용이었습니다. 점점 더 무서워져만 가는 사회...

dimanche 11 novembre 2007

기구 (montgolfière)

« 기구 »를 불어로는 (그리고 몇몇 다른 언어로도) montgolfière 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Montgolfier 형제에 의해 발명되었기 때문. 오래된 가업을 물려받아 종이 제작업을 하던 죠제프-미셸 (Joseph-Michel Montgolfier, 1740-1810) 과 쟉-에띠엔 (Jacques-Étienne Montgolfier, 1745-1799), 두 몽골피에 형제는 우연히 난로불 위에서 종이가 나풀나풀 타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더운 공기가 찬 공기 보다 더 가볍다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는 잘 알려진 이 원리에 입각하여 그들은 여러 사적인 실험 뒤에 1783년 6월, 프랑쓰 남부 아노네 (Annonay) 에서 최초로 하늘을 나는 대형 풍선을 공식적으로 선보였습니다.

이 새 발명품은 곧 많은 관심과 후원을 얻어, 같은 해 9월에는 베르싸이으에서 루이 16세 앞에서 또다시 시연이 행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이 그저 큰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던데 반해, 베르싸이으의 실험에는 풍선 밑에 바구니를 달아 양, 닭, 오리를 한 마리씩 싫었습니다. 이것이 날지 못하는 생물의 역사상 최초 비행입니다. 세 마리의 동물은 약 500 미터의 고도에서 8분 동안 3.5 킬로미터를 날은 후 땅으로 무사히 도착했고, 루이 16세는 이 세 동물에게, 잡아 먹히는 대신 왕궁의 동물원에서 여생을 편히 지낼 권리를 주었다고 합니다.

최초로 인간을 싫은 시험은 1783년 10월 19일, 빠리 뤼 드 몽트뢰이으 (우리집에서 가까운^^) 에서 행해졌습니다. 이 때 몽골피에르에 오른 사람은 프렁쓰와 삘라트르 드 로지에 (François Pilâtre de Rozier, 1754-1785). 이것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인간의 최초 비행이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 몽골피에르를 끈으로 땅에 묶어두고 행해졌습니다. 실제로 완전히 자유로운 비행은 1783년 11월 21일, 다시 한번 삘라트르 드 로지에와,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보조, 프렁쓰와-로렁 다를렁드 (François-Laurent d'Arlande, 1742-1809) 를 함께 태우고 행해졌습니다. 이 몽골피에르는 현재 빠리의 16구 (서쪽) 에서부터 13구 (남쪽) 까지, 약 12킬로미터를 25분에 걸쳐 1000미터의 높이로 날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내린 자리는 현재 쁠라쓰 뽈-베를렌 (place Paul-Verlaine) 이 되었는데, 여기에 가면 이 인류 역사상 첫번째 비행인들의 도착을 기념하는 비를 볼 수 있습니다.

몽골피에르의 잇달은 성공은 많은 과학자들과 발명가들의 관심을 유발시켰는데, 그 중 쟉 샤를 (Jacques Charles, 1746-1823) 이라는 물리학자는 몽골피에르를 이용하되, 불로 공기를 덥히는 대신, 아예 처음부터 산소보다 더 가벼운 기체인 수소로 풍선을 채우는 응용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charlière 라 불린 이 풍선은 1783년 12월 1일, 그러니까 몽골피에르에 비해 단지 십일 뒤에, 발명가 샤를이 직접 타고, 약 두 시간 동안 36 킬로미터를 날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샤를리에르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두어 보다 더 발전된 여러 기구의 받침이 되었고, 현재도 사용되고 있지만, charlière 라는 단어는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오늘날 가스를 이용하는 기구는 ballon à gaz (가스 풍선) 또는 그저 몽골피에르라고 부르지요.

기구 전문 비행사가 된 삘라트르 드 로지에는 몽골피에르와 샤를리에르를 혼합한 씨스뗌을 갖춘 풍선을 타고, 1785년 6월, 영불해협을 건너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영불해협은 이미 같은 해 1월 프랑쓰인 졍-삐에르 블렁샤르 (Jean-Pierre Blanchard) 와 미국인 죤 제프리스 (John Jeffries) 에 의해서 처음으로 횡단되었는데, 다만 이 때는 영국에서 프랑쓰 방향이었습니다. 삘라트르 드 로지에는 역방향 횡단을 시도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쓰에서 영국으로 날아가는 것은 바람의 자연스러운 방향에 역행이기 때문에 훨씬 어려운 도전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삘라트르 드 로지에와 그의 조수를 태운 풍선은 프랑쓰 북부 불로뉴 (Boulogne) 를 출발한지 몇 분이 채 못되어 불이 붙어 추락했고, 두 사람은 즉사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은 인간인 프렁쓰와 삘라트르 드 로지에는 인류 최초로 비행 사고로 죽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빠리 15구, 씨트로엔 공원 (Parc Citroën) 의 몽골피에르

이 기구는 사람을 태우기는 하지만 (돈받고), 멀리 날라가지 못하도록 끈으로 땅바닥에 묶여 있습니다. 16구에서부터 바라 보고 찍었기에 사진이 좀 멉니다.

vendredi 9 novembre 2007

재단기 (massicot)

프랑쓰의 단두대는 guillotine 이라는 공식 명칭 외에도,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louisette, louison 으로도 불렸으며, 그 외에도 시대 별로 rasoir national (국립 면도칼), veuve (과부), silencieuse (말없는 여자) 등등, 여러 대중적인 별칭들이 유행했었습니다. massicot 도 그 중 하나입니다. 마시꼬 (종이 재단기) 는 인쇄소, 제본소 등에서 두꺼운 종이 뭉치를 한꺼번에 똑같은 크기로 자르는데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넓직하고 네모난 판에 정확한 측정을 위해 여러 눈금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상당히 두꺼운 칼날이 붙어 있습니다. 이 칼을 올렸다 내렸다 함으로써 종이를 자를 수 있습니다. (칼이 오른쪽에 붙은 것은 순전히 오른손잡이들의 횡포일 뿐 별 중요한 의미는 없습니다. 왜 소수의 사람들은 항상 괄시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 복사 가게 따위에서 마씨꼬를 사용해 보면 아닌게 아니라, 섬뜩하고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 혹시 손가락이라도 끼면 그대로 잘려나갈 것만 같은...

마씨꼬와 기요띤은 시퍼런 칼날 외에 언어학적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massicot 라는 말도 그 발명가인 기욤 마씨꼬 (Guillaume Massicot, 1797-1870) 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1840년에 이 기계공이 고안한 재단기는 위에서 묘사한 대로 매우 간단한 원리를 따르지만, 오늘날 마씨꼬라고 하면 컴퓨터 프로그람이 장착된 마씨꼬, 종이 뿐 아니라 철판 따위도 자르는 마씨꼬 등 매우 다양한 기계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massicoter 라는 동사도 낳았습니다. 이 말은 « 자르다, 가장자리를 다듬다 » 는 뜻

내가 집에서 사용하는 개인용 작은 마씨꼬

mercredi 7 novembre 2007

단두대 (guillotine)

프랑쓰 혁명 중에 처음 등장한 사형 기구, 기요띤 (guillotine) 은 죠제프 이냐쓰 기요땅 (Joseph Ignace Guillotin, 1738-1814) 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흔히 기요띤을 발명한 사람으로 언급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는 발명자가 아니라 단지 기획자일 뿐입니다. 의사 출신으로서 삼부회 의원으로 뽑힌 기요땅은 사형수들이 오래 고통스러하지 않고 단숨에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자고 제안했으며, 이 제안에 따라, 역시 의사 출신이었던 엉뜨완 루이 (Antoine Louis, 1723-1792) 가 사선 모양으로 생긴 무거운 칼날을 2 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수직으로 빠르게 떨어뜨림으로써 사람의 목을 일순간에 자르는 기계를 고안했습니다. 진짜 발명가의 이름을 따서 애초에 이 기계는 louisette 또는 louison 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하지만 민중들 틈에서는 설계자의 이름보다는 기획자의 이름이 더 크게 각인되었는지, 단두대는 결국 기요띤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집니다.

기요띤은 보다 인간적인 (?) 사형 방법이라 할 수 있지만 (과연 사형을 인간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혁명 정신에 보다 적합한, 즉 평등한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지은 죄에 따라, 그리고 속한 신분에 따라 죽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특히 목이 잘려 죽는 사형은 이론적으로는 가장 고통이 짧은 벌로서, 귀족들에게만 제한된 « 특권 » 이었습니다. 하지만 단두대가 생기기 전에는 사람이 직접 도끼로 목을 잘랐기 때문에, 때때로 도끼가 너무 무겁거나, 죄인이 목을 움직이거나 하여, 헛질을 하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즉각 죽기는 커녕, 여러 차례 도끼질을 다시 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지요. 평민들은 주로 교수형 (pendaison) 을 당했거나, 쟌 다르끄처럼 화형 (bûcher) 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죽기 전에 한참을 괴로와해야 하는 벌이었습니다.

한편, écartèlement 은 사지를 각각 말에 묶은 후, 말들을 동시에 사방으로 달리게 함으로써, 죄인의 몸이 갈갈이 찢어져 죽게 했던,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 능지처참 »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은 다른 벌을 가리키며 écartèlement 에 해당하는 벌은 « 거열 » 또는 « 차열 » 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고 하는군요. 아무튼 프랑쓰에서 이 사형법은 왕을 살해하였거나, 왕을 해치려 시도했던 죄인들에게만 적용되었던 매우 예외적인 벌로서, 실제로 이렇게 죽은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엉리 4세를 살해한 프렁쓰와 라바이약 (François Ravaillac, 1610년).

입법국회 (Assemblée législative) 는 1791년 10월 6일자의 법령을 통해, 앞으로 모든 사형수는 머리가 잘려 죽는다고 선포함으로써, 죄수들 틈에서도 존재했던 신분 차별을 폐지했습니다. 이 법의 채택 이후 기요띤은 특히 공포 정치 (Terreur) 시대 동안 (1792-1794) 수만명의 목을 닥치는 대로 잘랐으며, 1981년 프랑쓰에서 사형제도가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기요땅은 자기 이름이 이 살인 기계와 연관된 것을 평생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기요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말이 흔한데, 이것은 잘못된 소문이고, 말년에 그는 정치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다가, 어깨에 생긴 혹이 잘못 도져서 그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기요땅은 또 1789년 6월 20일, 갈 곳 잃은 삼부회 평민 의원들을 베르싸이으 시의 손바닥 놀이장으로 인도해 간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mardi 6 novembre 2007

따옴표 (guillemet)

« 따옴표 » 는 불어로 guillemet 라 합니다. 이 말은 이 문장 부호를 처음 고안한 인쇄업자 Guillaume 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 사전, 백과 사전, 어원 전문서적, 인터넷 등을 찾아 보아도, 이 기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언제 어디서 나고 죽었는지, 어떤 계기로 따옴표를 발명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므로, 저 개인적으로는 약간 의심을 두고 있습니다. guillemet 라는 단어의 사용은 1667년에 처음 확인되므로, 기호는 그보다 얼마전 발명되었다고 막연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따름이겠지요. 하지만 Guillaume, Guillaumet, Guillemet, Guillemette 등은 중세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흔한 이름과 성이므로, 고유 명사로부터 이 보통 명사가 비롯된 점은 받아들여도 좋을 듯 싶습니다.

기으메는 « ... » 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호는 흔히 프랑쓰식 따옴표라고 불리지만, 프랑쓰 외에도 이딸리아, 에스빠냐, 그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식 따옴표 ("... ") 도 불어 인쇄물들에서 종종 보게 되기도 하는데, 주로 인용문 내에서 또다시 인용을 해야 할 때 사용하거나, 또는 피치 못할 때는 프랑쓰식 따옴표를 대체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피치 못할 상황이란 주로 인터넷 상으로서, 영어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인터넷에서 영어 이외의 글자나 부호를 쓰려면 늘 애를 먹게 됩니다. 저 역시 이 블로그를 쓰면서 어떻게 기으메를 표시해야 되는지 몰라 처음에는 영어식 따옴표를 썼었는데, 얼마전부터는 프랑쓰식 따옴표를 쓰는 조합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 는 option + è, » 는 option + 대문자 + è) 또 프랑쓰식 따옴표는 영어식 따옴표와 달리 글자에 달라 붙지 않습니다. 즉, 따옴표과 글자 사이에 한 칸의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 따옴표 » (O), «따옴표» (X).

lundi 5 novembre 2007

수첩 (calepin)

« 수첩 » 을 불어로는 calepin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베르가모 출신의 수사 (religieux) 이자 어학자였던 암브로죠 깔레삐노 (Ambrogio Calepino, 1435-1511) 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최초의 사전다운 사전을 출판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애초에 그의 사전은 « 라라 » (^^) 사전, 즉 라띠나어를 라띠나어로 설명한 사전이었는데, 이 사전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각 나라말 번역판이 첨부되었습니다. 즉 이 사전 한 권이면 라띠나어부터 출발하여 이딸리아어, 불어, 영어, 독어 등등을 모두 찾아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초판은 1502년, 최종판은 1772년에 나왔으니, 거의 삼백년에 가깝도록 많은 학생과 학자들에게 꺌빵 사전은 사전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세대를 거치다보니 calepin 은 첫자의 대문자를 잃고, « 사전 » 이라는 의미의 보통 명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불어 뿐 아니라 이딸리아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딸리아어로는 현재도 calepino 라고 하면 « 사전 » 이라는 뜻입니다. 불어에서는 18세기까지는 calepin 이 « 사전 » 을 의미했으나, 19세기 초에 다시 한번 의미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손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보는 책이다 보니 그랬는지, 이 사전을 보면서 공책에다 필기를 해서 그랬는지, calepin 은 « 작은 공책, 수첩 » 을 뜻하는 말이 되습니다. 여러 언어를 담고 있던 (판본에 따라서는 11개의 언어까지) 꺌빵은 사실 매우 방대한 사전이었는데, 오늘날은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그리고 아무 거나 적을 수 있는 백지의 작은 수첩이 되어버렸습니다.

dimanche 4 novembre 2007

점자 (braille)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올록볼록한 « 점자 » 를 불어로는 (그리고 기타 유럽 언어들에서도) braille 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단어는 보통 명사로 쓰이지만, 애초에는 고유 명사, 즉 루이 브라이으 (Louis Braille, 1809-1852) 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맹인이었던 루이 브라이으는 열 세살 무렵 이미 초보적인 맹인용 철자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이 어린 시절의 발명을 정교화하여 1828년, 그의 나이 19 살에 완성본을 발표하였습니다. 여섯 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다양하게 조합하고 배치함으로써 얻어지는 브라이으 체계는 곧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던 브라이으는 악보용 점자도 만들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어 브라이으와 달리 음악 브라이으는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문득 어렸을 때 저랑 같이 피아노를 배웠던 장님 소년이 생각납니다. 걔도 늘 점자로 된 악보를 가지고 와서 한 번 만져본 후 피아노를 치곤 했는데... 걔는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나 ?

루이 브라이으의 시신은 현재 뻥떼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samedi 3 novembre 2007

식물이름들 (bégonia, etc.)

담배와 마찬가지로 많은 식물들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때로는 그 식물을 처음 발견하거나 유럽에 도입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졌지만, 때로는 직접 관련이 없어도 그저 이름을 기리고자 유명인의 이름이 붙기도 했습니다. 불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몇몇 예 :
   
식물 이름 : 어원을 제공한 고유 명사


  • 베고니아 (bégonia) : 미셸 베공 (Michel Bégon, 1638-1710) 프랑쓰의 해군 장교
  • 부걍빌레 (bougainvillée 또는 bougainvillier) : 루이 엉뜨완 드 부걍빌 (Louis Antoine de Bougainville, 1729-1811) 프랑쓰의 항해사
  • 동백 (camélia) : 꺄멜리 또는 카멜 (Camelli ou Kamel, 17 세기) 예수회 전도사
  • 달리아 (dahlia) : 안데르쓰 달 (Anders Dahl, 1751-1789) 쒸에드의 식물학자
  • 퓌쉬아 또는 퓌크씨아 (fuchsia, 두 발음 가능) : 레온하르트 푹쓰 (Leonhard Fuchs, 1501-1566) 독일의 식물학자
  • 가르데니아 (gardénia) : 알렉싼더 가든 (Alexander Garden, 1730-1791)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
  • 마뇰리아 (magnolia) : 삐에르 마뇰 (Pierre Magnol, 1638-1715) 프랑쓰의 의사이자 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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