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edi 31 mars 2007

라 보엠 (La Bohème)

또스까보다 1년 전, 1896년에 발표된 뿌치니의 오뻬라 라 보엠 역시 프랑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엉리 뮈르제 (Henry Murger) 의 보엠의 삶의 장면들 (Scènes de la vie de bohème). 이 오뻬라에 대해 예전에 제가 인터넷 상에서 썼던 글이 있기에, 연결을 올립니다.

jeudi 29 mars 2007

빠르마... 와 또스까 (Parme... et Tosca)

뿌치니 (Giacomo Puccini) 의 오뻬라 또스까 (Tosca) 를 보면 2막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여주인공 플로리아 또스까가 악독한 스까르삐아의 압력과 정신적 고문에 못이겨 그의 음흉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단 나중에 문제없이 이딸리아를 떠날 수 있도록 안전통행서 (salvocondotto = sauf-conduit) 를 발행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스까르삐아가 묻지요 :

- E qual via scegliete ? (= Et quelle route choisissez-vous ? = 어느 길로 떠나겠느냐 ?)
- La più breve (= La plus brève = 가장 짧은 길)
- Civitavecchia ? (치비따베끼아 ?)

어제, 스땅달이 치비따베끼아에서 영사로 근무하던 중 빠르마의 샤르트르즈 수도원을 썼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 오뻬라의 이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 오래된 (vecchia) 도시 (cività = città 의 옛말 = 불어 cité) » 라는 뜻의 치비따베끼아는, 과연 로마에서 멀지 않은 작은 항구 도시로, 여기서 배를 타면 프랑쓰나 에스빠냐 쪽으로 쉽게 떠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좀 더 생각을 해 보니 스땅달의 소설과 또스까 사이에는 서로 연관되는 요소들이 몇가지 더 있는 듯 합니다.

우선 방금 인용한 장면은 파르네제 궁 (Palazzo Farnese = Palais Farnèse) 에서 벌어집니다. 파르네제 궁이란 알레싼드로 파르네제 (Alessandro Farnese) 가 미깰란젤로로 하여금 로마에 짓게한 화려한 궁전인데, 궁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레싼드로 파르네제가 바로 빠르마의 샤르트르즈 수도원의 주인공인 파브리쓰 델 동고 (Fabrice del Dongo) 의 원 인물이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스땅달이 자신이 발견한 필사본에서 특히 애착을 가졌던 이야기란, 다름 아니라 바로 알레싼드로 파르네제의 젊은 시절 행각이었던 것입니다. 소설 속의 파브리쓰는 빠르마 근처의 샤르트르즈회 수도원에서 젊은 나이에 죽는데, 실제 인물인 알레싼드로 파르네제는 훗날 뽈 3세 (Paul III) 라는 이름으로 교황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지요.

비록 16세기 실존 인물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스땅달은 빠르마...의 시대를 19세기 초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또스까 역시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또스까는 정확하게 1800년 6월 14일 (마렌고 전투) 이후의 며칠간을 그린 이야기이고, 빠르마...는 정확한 연도는 계산하기 힘들지만, 1800년을 전후로 하는 수년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습니다.

프랑쓰 혁명의 파장과 그것의 번짐을 막으려는 외스터라이히 제국의 압박 사이에 끼어 이 시기의 이딸리아는 수많은 전쟁을 겪었으며,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빠르마...의 파브리쓰 델 동고와 또스까의 마리오 까바라도씨는 모두 혁명에 우호적인 입장을 분명히 취함으로써 복잡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물론 파브리쓰는 마리오에 비하면 훨씬 더 개인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또스까의 원작자는 프랑쓰 사람 빅또리앙 싸르두 (Victorien Sardou) 였다는 점입니다. 싸르두와 스땅달, 두 프랑쓰 사람이 비슷한 시대, 비슷한 정치적 상황 하의 이딸리아를 배경으로, 이딸리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프랑쓰말로, 프랑쓰 관객을 위하여 글을 썼다는 점, 특별히 놀라울 것은 없으나, 흥미로운 공통점 아닐까요 ?

그외에 그냥 참고 사항으로, 파르네제 궁은 현재 이딸리아 주재 프랑쓰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반 관광객은 불행히도 로마의 4대 경이로움 (quattro meravigli di Roma = quatre merveilles de Rome) 의 하나라 불리는 이 궁을 방문할 수 없지요. 게다가 프랑쓰 정부는 이 궁을 빌리는데 1 년에 단 1 외로를 이딸리아에 지불한다고 합니다.

mercredi 28 mars 2007

엉리 벨 (Henri Beyle)

도피네 지방 출신 작가 중에 국제적으로 이름을 얻은 엉리 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783년 그르노블에서 태어나, 이딸리아에서 주로 살았고, 1842년 빠리에서 죽은 이 작가는 본명 보다 다양한 필명 (pseudonyme) 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다음은 그 필명들의 목록 (알파베 순) :

  1. Cardinal ABERONI
  2. AWISEK
  3. BARLADSHIP
  4. Timoléon du BOIS
  5. Louis-Alexandre-César BOMBET
  6. Ch. BRANLEBAS
  7. Il Cavalier CARDENIO DELLA SELVA NERA
  8. CASIMIR
  9. CASTOR
  10. Alex CLAPIER
  11. Général COK
  12. CORNICHON
  13. Poco CURANTE
  14. Chevalier de CUTENDRE
  15. L'ENNUYÉ
  16. Don GRUFFO PAPERA
  17. HUMMUMS
  18. Jules-Onuphre LANI
  19. LOVEPUFF
  20. PABO
  21. Baron PATAULD
  22. Anastase de SERPIÈRE
  23. SMITH & Co.
  24. SPHINX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필명 :

25. STENDHAL

엉리 벨 또는 스땅달은 Le Rouge et le Noir (적과 흑), La Chartreuse de Parme (빠르마의 샤르트르즈 수도원) 같은 장편 소설 외에도 여러 종류의 단편 소설, 수필, 여행기, 논설, 신문기사, 일기 등등을 발표하면서 번번이 다른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저작들의 대부분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답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더 자주 이름을 바꾸려고 해 본 것이 아닐까 ? 순전히 저의 짐작)

비록 스땅달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명성을 얻고 사교계를 드나들기도 했지만 큰 돈은 벌지 못했기에 일상은 비교적 가난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취미로 글을 쓰는 것 외에 공식 생업은 외교관의 공무원이었는데, 덕분에 이딸리아에서 생애의 많은 부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딸리아어도 잘 했으며, 이딸리아에 대한, 이딸리아를 배경으로 한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 십여년 (1830-1842)은 로마 근처의 소도시 치비따베끼아 (Civitavecchia) 에서 영사 (consul) 로 근무했는데, 이 때 우연히 16-17세기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로마 지방 사투리로 적은 필사본을 손에 넣게 됩니다. 스땅달은 여기에 담긴 이야기들을 추리고 증폭하고 각색하여 여러 편의 단편 소설로 발표했는데, 그 중 한 이야기는 유난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장편으로 확장하기로 마음먹고, 단 53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 바로 빠르마의 샤르트르즈 수도원이지요.

dimanche 25 mars 2007

아르꺄바쓰 (Arcabas)

그렁드-샤르트르즈 수도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쌍-삐에르-드-샤르트르즈 (Saint-Pierre-de-Chartreuse) 라는 산속 마을이 있는데, 여기에 쌍-뛰그-드-샤르트르즈 (Saint-Hugues-de-Chartreuse) 라는 자그마한 성당이 있습니다. 이 보잘것 없어 보이는 성당의 특별한 점이라면, 내부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예술가에 의해서 장식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르꺄바쓰라는 화가가 그 사람인데, 성당의 모든 벽이 이 사람의 그림으로 뒤덮혀 있으며, 그 외에도 조각품, 십자가, 미사에 쓰이는 용품들, 색깔유리창 등, 성당 안의 모든 것이 이 사람의 작품입니다. 마치 미깰란젤로가 씩스띤 성당을 장식한 것과 비슷하죠. 물론 그 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고, 그림의 양식도 다르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아르꺄바쓰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그 사람의 개인 박물관에 와 있는 느낌을 줍니다.

졍-마리 삐로 (Jean-Marie Pirot) 라는 본명을 가진 화가 아르꺄바쓰는 태어나기는 메쓰 (Metz) 에서 태어났지만, 그르노블에서 미술 공부를 했으며, 계속 도피네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현재도 쌍-삐에르-드-샤르트르즈에서 살고 있지요. 20년대 쯤 태어난 사람이라 현재 나이는 무척 많습니다. 성-위그 성당 외에도 한 건물이나 장소 전체를 모두 장식하는 대규모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하니까 좋은 점이, 달랑 유명한 그림 한두 편만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가의 전반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림을 잘 감상할 줄 모르지만, 이 사람의 그림은 많이 애착이 갑니다. 소박한 듯 하면서도 화사하고,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종교적인 주제를 자주 다루지만 엄숙하지 않고, 순진해 보이지만 심오함이 숨어있고, 심오하지만 소박하고...

성 위그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그의 몇몇 대표작들 :

Ange dubitatif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의 천사)
Ange espiègle (장난꾸러기 천사)
Anges chantant (노래하는 천사들)
La Brebis retrouvée (되찾은 양)
Le Bon Pasteur (착한 목자)

Nolite timere (놀리떼 띠메레)



제가 개인적으로 유난히 좋아하는 작품은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의 천사와 놀리떼 띠메레입니다. 천사라면 인간들보다 훨씬 더 확신에 찬 존재일 듯 싶은데, 이 천사는 안그런것 같죠 ? 다른 천사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장난을 치거나,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열중해 있는데, 이 천사는 뭔가 못믿겠다, 왜 그럴까 하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갸우뚱 앉아 있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놀리떼 띠메레는 마치 이 천사와도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Nolite timere = 라띠나어로 « 겁내지 마세요 ». 하지만 그 표지판을 들고 있는 소년, 또는 천사, 또는 예수 (?) 도 웬지 별로 자신있어 보이는 표정이 아니죠 ?

그래서 겁내지 말고 살아야 할텐데... 사실 의심이 많이 듭니다...

도피네 여행 (voyage en Dauphiné)

도피네 (Dauphiné) 프랑쓰의 남동부에 위치한 옛 지방으로, 현재는 대략 싸브와 (Savoie) 남쪽, 프로벙쓰 (Provence) 북쪽, 리용 (Lyon) 의 동쪽, 이딸리아의 서쪽에 해당합니다.

  • 비엔 (Vienne) : 비엔은 로마 시대때부터 크게 발전했던 도시로, 지금도 로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얼마 전에도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중세에는 도피네 지방의 수도와도 같이 여겨졌구요. 하지만 점차 중심지가 그르노블로 옮겨졌습니다.
  • 그르노블 (Grenoble) : 그르노블은 도피네와 그 근방 지역에서 제일 대도시이긴 한데, 사실 별로 볼 건 없습니다. 사방이 산 (Alpes) 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여름엔 무지 덥고 겨울엔 무지 춥습니다. 60년대에 겨울 올림픽을 주최한 적도 있듯이, 주변 산들에는 겨울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답답한 느낌을 주는 도시입니다. 산 때문에, 그리고 고풍적이기 보다는 비교적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 때문에, 웬지 한국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 그르노블의 바스띠으 (Bastille de Grenoble) : 바스띠으 하면 흔히 빠리에 있던 감옥을 생각하는데, 사실 이 말은 « 요새, 성곽 » 이란 뜻일 뿐입니다. 그르노블에도 바스띠으라 불리는 옛 요새의 흔적이 북쪽 산 중턱에 남아 있는데, 여기 올라가면 도시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올라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 (téléphérique) 를 타지요 (물론 힘이 넘치는 사람들은 걸어서 갈런지 모르겠으나). 동그랗게 생긴 이 케이블카가 볼 것 없는 그르노블의 그나마 자랑거리입니다. 모두 그르노블에서 촬영된 뤼꺄 벨보의 삼부작 (La Trilogie de Lucas Belvaux) 을 보면 동그란 케이블카를 비롯하여 그르노블과 그 주변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르노블의 케이블카
  • 베르꼬르 (Vercors) : 그르노블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 베르꼬르는 매우 가파르고 험한 산입니다. 찻길이 깔려 있는데, 낭떠러지 바로 옆으로 달리고, 매우 좁고 꼬불꼬불해서 상당히 무섭습니다. 2차대전 때는 그래서 저항자들의 요지로 쓰이기도 했지요. 물론 독일군의 비행 습격에 모두 처참하게 죽었지만... 바다의 침묵 (Le Silence de la mer) 을 쓴 작가 베르꼬르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명은 Jean Bruller). 바다의 침묵은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착한 독일군 장교와 한 프랑쓰 여자 사이에 의사소통의 불가능을 주제로 한 짤막한 소설입니다.
가파른 베르꼬르
  • 그렁드-샤르트르즈 (Grande-Chartreuse) : 역시 그르노블을 둘러싸고 있는 큰 산맥 중 하나인 샤르트르즈에 그렁드-샤르트르즈라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샤르트르회 (ordre des Chartreux) 의 본원으로서, 전세계의 샤르트르회 수도원들은 모두 여기서 퍼져 나갔지요.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이 빠르마의 샤르트르즈 (이딸리아어로 Certosa di Parma). 스땅달이 여기를 무대로 La Chartreuse de Parme 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지요. 그런데 우연이랄까, 스땅달은 바로 그르노블 출신의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르노블 보다는 이딸리아를 훨씬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 ^^) 또다른 유명한 샤르트르즈 수도원은 역시 이딸리아의 빠비아 근방에 있지요 (Certosa di Pavia). 작년 이맘쯤 빠비아의 코앞까지 갔었는데 그만 못보고 왔습니다. 프랑쓰 본원의 샤르트르회 수사들은 수백년 전부터 자기네들만의 비밀 기법으로 샤르트르즈 (chartreuse) 라 불리는 술을 만들어 팝니다. 약초와 향료 따위를 수백가지 섞는다고 하는데, 샤르트르회 수사들이라고 해도 재료의 비밀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적은 수의 수사들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초록빛이 나는 술로 매우 독하다고 합니다.
그렁드-샤르트르즈
  • 슈발 우체부의 이상적인 궁전 (Palais idéal du facteur Cheval) : 오뜨리브 (Hauterives) 라는, 그르노블보다 남쪽에 있는 작은 시골 도시에 페르디넝 슈발 (Ferdinand Cheval) 이라는 사람이 20세기 초까지 살았었습니다. 그는 직업이 우체부였는데, 매일 같이 편지를 나르면서 돌을 하나씩 주워 날라 거의 사십년에 걸쳐 오로지 혼자 힘으로, 궁전 하나를 지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 이 특이한 건축물은 니끼 드 쌍-팔 (Niki de Saint-Phalle) 에게 큰 영감을 주어, 그녀도 자신의 이상적인 궁전이라 할 수 있는 따로의 정원 (Jardin des Tarots) 을 건설하게 됩니다.
슈발 우체부의 이상적인 궁전
  • 쌍-베렁 (Saint-Véran) : 도피네 지방의 남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도시랍니다.

vendredi 23 mars 2007

그라땅 도피느와 (gratin dauphinois)

그라땅 도피느와는 « 도피네 지방의 그라땅 » 이라는 뜻으로, 감자로 만듭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만드는 법과 재료가 다른데, 대충 기본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감자의 껍질을 벗기고 씻은 후, 얇고 납작하고 동그랗게 썬다.
  2. 그라땅용 그릇에 버터 칠을 한 후, 감자칩들을 고르게 깐다. 이 때 칩들끼리 서로 약간 포개지게 한다.
  3. 한 층이 다 깔리면 소금, 후추와 마늘로 약간씩 간을 하고, 크림과 그뤼예르 (또는 에멍딸, 또는 꽁떼...) 갈은 것을 넣기도 한다.
  4. 다시 감자칩들을 한 층 더 깐 후 3 을 반복한다.
  5. 그릇이 다 찰 때까지 위의 행위들을 반복한 후, 우유를 붓는다.
  6. 200도 정도의 오븐에 넣고 한 시간 정도 익힌다.
  7. 한 시간 뒤, 그라땅을 꺼내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뤼예르를 고르게 얹고, 다시 십분에서 십오분 정도 더 오븐에 넣는다.
  8. 그뤼예르 얹은 것이 노릇노릇, 꾸들꾸들하게 익으면 완성.
  9. 쌀라드와 함께 먹는다.

그라땅 도피느와
참고로, gratin 은 우리말의 누룽지와 비슷한 말입니다. gratter = «박박 긁다» 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이것은 처음에는, 타서 그릇에 달라 붙은 음식 딱지들을 지칭했습니다. 그것들을 떼어내려면 박박 긁어내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현재는 약간 의미가 변해서 치즈, 쏘쓰, 빵가루 등으로 일부러 표면을 노르스름하게 살짝 그을리는 기법, 또는 그렇게 해서 얻어진 음식을 말합니다. 프랑쓰에서는 감자나 야채 외에도, 고기나 물고기로도 많이 만들고, 또 후식으로는 과일 그라땅도 많이 먹습니다.

그럼 bon appétit !

jeudi 22 mars 2007

유럽 왕자들의 칭호 (titre des princes européens)

에스빠냐 왕가 (그리고 뽀르뛰걀) 에서는 장남을 제외한 자녀들에게 infante/infanta (여성형) 라는 호칭이 주어졌고, 여전히 왕국이므로, 현재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infante 는 라띠나어 infans 에서 유래된 말로, « 어린이 » 라는 뜻도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에스빠냐어에서 보통 어린이를 지칭할 때는 niño/niña 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비슷한 경우로 외스터라이히 제국에서는 황실의 자녀들에게 Erzherzog/Erzherzogin 이라는 호칭을 주었습니다. 불어로는 archiduc/archiduchesse 라 하고 우리말로는 « 대공/대공녀 » 등으로 해석하는 걸 본 기억이 있는데, 모두다 보통 Herzog, duc, 공작 보다 더 높다는 뜻이지요.

동로마 제국 또는 비졍쓰 황실의 자녀들은 porphurogenêtos 라는 명칭을 받았었습니다. 불어로는 porphyrogénète 라 하는 이 말은 « 보라색 속에서 태어난 » 이란 뜻인데,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황후가 해산을 하던 방이 보라색 빛깔이 나는 돌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불어의 pourpre, 영어의 purple 같은 말도 이 돌의 색깔에서 비롯되었지요.

반암 (porphyre) 으로 빚은 항아리
꽁데 박물관, 셩띠이

프랑쓰의 경우 왕손들을 모두 통칭하는 특별한 용어는 따로 없었습니다. 그저 princeprincesse 라 불렸지요. 하지만 첫아들 또는 왕위계승자 만은 특별히 dauphin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습니다. dauphin 은 옥어 dalfin 에서 온 말로, 중세에 프랑쓰 남부가 아직 북쪽에 합병되기 전에 비아네쓰 (Vianes, 현재는 프랑쓰의 Viennois) 와 알베르녜 (Alvernhe, 현재는 프랑쓰의 Auvergne) 라는 두 지역의 우두머리가 지니던 공식 명칭이었습니다. 비아네쓰의 달핀 중 14세기에 앙베르 2세 (Humbert II, 1313-1355)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후계자가 없었고 경제적인 난관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쓰 왕 필립 6세에게 자기 나라를 팔았습니다 (1343). 단, 여러 조건을 걸었지요. 비아네쓰 지방의 자율성을 보존할 것, 여러 종류의 세금 면제, 그리고 영토를 왕이 다스릴 것이 아니라 왕의 큰아들이 다스릴 것, 등등. 프랑쓰 측에서 이 모든 조건들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이후로는 프랑쓰의 왕세자가 달핀이 되었고, 명칭도 불어로 변하여 dauphin 이 되었으며, dauphin 이 다스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Dauphiné 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도팡으로 임명이 되면 왕이 되기 전 연습 겸 해서 왕자가 직접 도피네에 내려가 살면서 지방을 통치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것은 순전히 명예적 호칭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는 왕위 계승자에게 전통적으로 웨일즈 지방을 다스리게 했었지요. 그 때문에 지금도 영국에서는 왕세자를 prince of Wales 라 칭하는 것입니다 (불어로는 prince de Galles). 현재 prince of Wales 는 Charles.

다시 에스빠냐로 돌아가서, infante 는 «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 » 이라고 했지요 ? 장남, 즉 왕위 계승자는 príncipe de Asturias 라 불립니다 (불어로는 prince des Asturies). 아스뚜리아쓰는 역시 에스빠냐 북서쪽의 지방 이름으로, 전통적으로 왕세자에게 주는 영토인 것이지요. 현재 príncipe de Asturias 는 Felipe de Borbón (불어로는 Philippe de Bourbon).

mercredi 21 mars 2007

나이 (âge de la vie)

불어의 homme 에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 « 1. 사람, 인간 ; 2. 남자 ». 하지만 이 단어의 기원인 라띠나어 homo 에는 1 번의 뜻밖에 없었습니다. 라띠나어에서 남자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uir 라는 말을 썼지요. 이 말에서 기원한 불어 형용사 viril 은 그래서 « 남자다운 » 이란 뜻입니다. 그 외에도 virilité (명사), viriliser (동사), 등등...

여자는 femina 라 했고, 이 말의 자연스러운 변천이 불어의 femme 이 되었지요. 불어 femme 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 « 1. 여자 ; 2. 아내 ». 하지만 라띠나어 femina 에는 1 번의 뜻밖에 없었습니다. 라띠나어에서 특별히 « 결혼한 여자 » 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coniux [꼰육쓰] 또는 uxor 라는 말을 썼었지요. uxor 는 불어에 uxoricide (아내 살인)uxorilocal (아내 명의 주소지의, 아내 이름으로 호적이 등록된) 같은 말들을 낳았고, coniux 는 불어의 conjoint(e) 으로 발전했습니다. conjoindre 라는 동사의 과거분사 형태이기도 한 conjoint 은 « 연결된, 묶인 » 이라는 뜻으로, 아무 데나 다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사람에 관해서는 « 결혼에 의해 연결된 », 그리고 명사화하여, « 배우자 » 라는 뜻이지요.

« 배우자 » 를 뜻하는 또다른 불어 époux, épouse 는 라띠나어 sponsus 에서 왔는데, 라띠나어에서 이 말은 « 배우자 » 가 아니라, « 약혼자 » 란 뜻이었습니다. spondere 라는 동사가 « 약속하다, 보증하다 » 라는 뜻이었는데, 그 말의 과거분사 형태이지요. 즉 « 약속된 », 그리고 « 약속된 사람 ». 영어를 통해 널리 퍼진 sponsor 라는 말은 이미 고대 로마 시대부터, « 큰 돈을 약속한 사람, 보증인, 후원인 » 이라는 뜻으로 쓰이던 말입니다.

현대 불어에서 « 약혼자 » 는 fiancé(e) 라 하는데, 역시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fiancer = « 약속하다, 믿고 맡기다 » 라는 동사의 과거분사.

« 결혼을 아직 하기 전의 여자 » 는 라띠나어로 uirgo 라 불렀고, 이 말이 불어에서 vierge (처녀) 가 되었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사실 이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말이 없지만, 흔히 puer 라는 말을 썼었습니다. 그런데 puer 는 법적으로 « 7 세부터 17 세까지의 남자 » 를 뜻하므로, 문맥에 따라 « 아이 » 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여기서 불어의 puéril 이라는 형용사가 나왔지요 (« 어린애 같은, 유치한 »).

결혼의 유무와 상관없이 17 살이 넘은 남자는 30 살까지, 간혹은 그 넘어서까지 adulescens [아둘레스껜쓰] 라 불렸습니다. 이 말은 adulescere 라는 동사의 현재분사형으로, 원뜻은 « 성장하고 있는, 증가하는, 발전 중인 » 이었습니다. 이 말이 변하여 불어의 adolescent(e) = « 청소년 » 이 되었습니다. 한편 같은 동사의 과거분사 형태는 adultus (= 다 성장한) 였는데, 이것이 변화하여 현대 불어에서 « 어른 » 을 뜻하는 adulte 가 되었습니다.

puer 보다 더 어린 아이는, 즉 잉태된 순간부터 시작하여 7 살까지는 infans 라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뱃 속의 아기는 말을 전혀 할 줄 몰랐고, 그리고 태어나서도 일곱살까지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infans 라는 말은 원래, « 말을 못하는 » 이라는 뜻의 형용사였거든요. in- (부정접두사) + fans (fari = « 말하다 » 의 현재분사). 순수하게 형용사로만 쓰이면, 나이에 상관없이, « 말을 잘 못하는, 유창하지 못한 » 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명사화시키면 법으로 제정한 « 7 살 미만의 어린이들 » 만을 가리킵니다. 아무튼 이 말이 변화하여 불어의 enfant 이 되었지요. 한편 불어에는 infant(e) 이라는 말도 있는데, 역시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지만, 에스빠냐를 거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에스빠냐와 뽀르뛰걀 왕가의 아들딸들에게 주는 공식 호칭이지요.

mardi 20 mars 2007

접미사 -cide

Holocauste, 즉 «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 은 génocide 였습니다 (그리쓰어 genos = « 인종, 종족») 또는 ethnocide 라고도 합니다 (역시 그리쓰어 ethnos = « 종족, 민족 »). -cide 라는 말은 라띠나어 caedes = « 죽임 » 에서 온 말로, 불어에는 이 접미사를 사용한 단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 roi (왕) 또는 reine (왕비) 을 죽인 사람, 또는 그 행위는 régicide ;
  • père (아버지) 를 죽인 사람 또는 그 행위는 parricide. (mère 를 죽이는 경우도 흔히 같은 말로 표현하나, 굳이 분리하자면 matricide 라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 ;
  • frère (형제) 를 죽이면 fratricide (자매를 죽이는 경우도 포함) ;
  • enfant (아이) 을 죽이면 infanticide ;
  • sui (자기자신)를 죽이면 suicide.
이 모든 경우는 다 homicide (homo = « 사람 »)이지만, 그 외에도,
  • insecte (벌레) 를 죽이면 insecticide ;
  • fongus (곰팡이) 를 죽이면 fongicide ;
  • sperme (정액) 를 죽이면 spermicide ;
  • liberté (자유) 를 죽이면 liberticide !!! (점점 더 liberticide 한 사회가 되어 가는 프랑쓰... 어디로 가야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요?)

lundi 19 mars 2007

뻥그람 (pangramme)

pan = « 모든 » + gramme = « 글자, 글씨 » 로 구성된 단어 pangramme 이라는 것의 정체는 실례를 직접 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

Portez ce vieux whisky au juge blond qui fume.

즉, 모든 글자들이 최소한 한번씩 사용된 문장을 말합니다. 물론 문법에도 맞고 뜻도 통하는 문장입니다. 확인된 것은 아니나, 죠르쥬 뻬렉이 지었다는 소문이 많이 도는 윗문장은 프랑쓰어로 된 뻥그람의 대표적인 예로 흔히 인용되는데, 그 외에도 불어판 위끼뻬디아 « pangramme » 에 가 보니, 다양한 예들이 나열되어 있더군요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불어의 경우, 윗문장처럼 기본 글자만 사용된 뻥그람이 있으며, 강세 부호를 비롯하여 여러 기호들이 첨가된 글자까지 모두 사용한 뻥그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몰랐는데, 역시 위끼뻬디아에서 보니 우리나라말로도 뻥그람을 만들더군요.

뻥그람은 (phrase) holalphabétique 이라고도 합니다. 그리쓰어 holo- = « 모든, 전체의, 완전한... » + alphabétique = « 알파베의 ». 그렇다면, pangramme 에서 pan- 을 holo- 로 대체하면 어떨까요 ? 그러면 hologramme 이 되는데, 이 때는 gramme 이 « 글자 » 가 아니라 « 그림 » 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즉, 단지 한 측면만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 앞, 뒤, 옆, 밑, 등등 모든 측면에서 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 삼차원 입체 영상 ». 올로그람을 얻는 사진기술은 holographie 라 합니다. holo- + (photo)graphie.

올로그라피가 20세기에 발명되기 수백년전부터 프랑쓰에서 사용되던 holographe 또는 olographe 라는 형용사가 있는데, 이 말은 « 전체가 단 한사람의 손에 의해 쓰여진 » 이라는 뜻입니다 (문서 따위를 말할 때).

그리고 또 잘 알려진 말로, holocauste 가 있지요. 이 말은 통째로 불에 다 탔다는 뜻으로, 유대교에서 동물을 불에 태워 신에게 바치는 « 희생 의식 » 을 말합니다. 2차대전 이후로는 유대인들의 « 학살 » 을 말하기도 하구요. 이 때는 주로 첫글자를 대문자로 씁니다 : Holocauste.

그럼 pomQ

dimanche 18 mars 2007

접두사 pan-

에르마프로딧 외에도 에르메쓰는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뻥 (Pan) 이라는 신은 반은 인간, 반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곧 양치기들을 보호하는 신, 그리고 더 나아가 숲과 산과 동물, 즉 자연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배되었지요. 하지만 그의 흉칙한 모습과 동물적인 성격 때문에,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모두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뻥 신에 의해서 유발된 이러한 혼란을 불어로 terreur panique (글자 그대로, « 뻥의 공포 »)이라 불렀었는데, 이 말이 결국은 줄어서 이제는 panique 이라고만 해도 « 극도의 공포 » 또는 « 갑작스러운 위기감 » 등을 의미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paniquer 라는 동사마저 나왔지요. 이 단어는 타동사이자 자동사이므로 « 남에게 겁을 준다 » 는 뜻으로도, « 스스로 겁을 먹다 » 라는 뜻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뻥이 인간에게는 무서운 존재로 보였다면, 신들한테는 우스운 존재로 보였습니다. 에르메쓰가 갓 태어난 그의 아들을 신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 모든 신들이, 이 염소의 뿔과 꼬리를 가진 아기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 했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이 신의 이름이 Pan 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레쓰어로 pan, panto = 모두). 또다른 설에 의하면, 뻥이 자연의 신이다 보니, 결국 자연, 즉 세상 모두를 창조한 것으로 여겨져서 그를 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발음과 철자가 같다는 점에 의존한 가설일 뿐, 오늘날 언어학자들과 신화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아무튼 며칠 전 pantophobie (모든 것에 대한 포비) 라는 말로 보았듯, pan-, panto- 라는 말은 « 모든 » 이라는 뜻의 접두사 역할을 합니다. pan- 으로 시작하는 말을 불어사전에서 보면 상당히 많은데, 그 중 우리도 잘 아는 말로 panorama 가 있습니다. 이 말은 pan- + orama (시각, 시야), 즉 « 전경, 전망 » 을 뜻합니다. 불어와 영어 중 똑같은 철자를 쓰거나 비슷한 형태의 단어들 대부분은 불어에서 영어로 건너간 경우가 많은데, 이 말은 영어에서 먼저 생긴 후 불어로 수입된 말입니다.

또 빠리 시내에는 Panthéon 이라는 건물이 있지요. 이 이름은 pan- 과 theos 로 구성된 말로 , « 모든 신 » 이라는 뜻입니다. 애초에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어느 특정 종교의 모든 신을 통칭할 때 이 말을 자주 씁니다. 여기서 뜻이 확장되어 « 모든 신에게 바쳐진 사원 » 을 의미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거의 신적인 숭배를 받아도 좋을 만큼) « 위대한 인물들에게 바쳐진 전당 » 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빠리의 뻥떼옹

빠리의 뻥떼옹에는 현재 국가에 큰 공헌을 했다고 여겨지는 약 70여명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데, 사실 그 대부분은, 외국 사람들에게는 물론, 프랑쓰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초기 공화국 시절들의 정치인들,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장군들 등이 많고, 의외로 과학자들이 꽤 많습니다. 그나마 이름이 비교적 잘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작가들로서, 볼떼르, 루쏘, 위고, 말로, 뒤마 뻬르 등이 뻥떼옹에 들어가 있습니다.

누가 뻥떼옹에 안치될 자격이 있고 없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자주 바뀌었는데, 현재는 순전히 대통령 개인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가끔씩 이 문제로 토론이 한판씩 벌어지고는 합니다. 누구는 들어갈 자격이 있다, 누구는 없다, 누구는 다시 끄집어 내야 한다, 등등. 가장 최근에 토론이 되었던 사람은 베를리오즈 (Hector Berlioz) 로써, 거의 들어가는게 확정되었었는데, 결국은 무효가 되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베를리오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작곡가 한 명 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빠리의 뻥떼옹


한편 70명 이상의 인물 중 여자는 단 두 명인데, 그나마 그 중 한 명인 쏘피 베르뜰로 (Sophie Berthelot) 는 개인적인 업적 때문이 아니라, 화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남편 마르쓸랑 베르뜰로 (Marcelin Berthelot) 와 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간에 죽었기 때문에 그냥 함께 매장을 해 준 것입니다. 따라서 순전히 개인적인 명목으로 뻥떼옹에 들어간 유일한 여자는 마리 뀌리 (Marie Curie) 뿐이지요. 어제 말했던 프랑쓰의 미조지니의 한 예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또다른 미조지니의 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Pandore 의 신화입니다. 뻥도르는 그레쓰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여자인데, 신들로부터 온갖 (pan) 선물 (doron) 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미와 덕을 겸비했던 이 여자는 인간 세상에 보내졌는데, 절대로 한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는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호기심이 났던 뻥도르는 항아리를 열고 말았고, 거기서 온갖 종류의 악 (전쟁, 병, 고뇌, 슬픔, 등등) 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게 되었답니다. 다만 가장 마지막에 희망 만은 항아리 안에 남아 있었다고 하지요.

다른 해석에 의하면, 그 항아리 안에 들어있던 것들은 악이 아니라 바로 신이 준 모든 선물들 (아름다움, 행복, 지혜, 등등) 이었는데, 뻥도르가 뚜껑을 여는 바람에 모두 뛰쳐나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상에는 나쁜 것들만 남게 된 것이구요.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희망만은 항아리 안에 남아 있었던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인간들은 아무리 힘들고 고달픈 일이 많아도 희망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라지요. 에이구, 그 놈의 희망이 뭔지...

samedi 17 mars 2007

접두사 mis-, miso-

접미사 -phile 의 반대가 -phobe 이라면, 접두사 phil(o)- 의 반대는 mis-,miso- 입니다. 이 접두사는 고대 그리쓰어 misein = « 싫어하다, 미워하다, 증오하다 » 에서 왔습니다.

misanthrope = « 인류를 미워하는 »
misanthropie = 윗단어의 명사형. 그리쓰어 anthropos = « 인간, 사람 » (anthropologie = 인류학).
misanthrope, misanthropie
의 반대는 philanthrope, philanthropie (인류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 박애정신) 입니다.

인류 중에서 유독 여자만 싫어하면 misogyne, misogynie 라 하지요. 프랑쓰는 제가 볼 때 상당히 미조진한 사회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는 프랑쓰보다 더 심한 나라들도 많지만, 프랑쓰 역시 여자들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합니다. 특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차별이 행해지지요. 아무튼 이 말의 어원은 miso- + gunê 또는 gunaïkos = 그리쓰어로 « 여자 ». gynécologie = « 여성학 (의학에서) », gynécologue = « 산부인과 의사 ».

남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단어도 있습니다 : misandre, misandrie.
anêr, andros
= 그리쓰어로 « 남자 ».

사람 이름 André (또는 다른 나라 말로 Andrea, Andrew, etc.) 는 별게 아니라, 단지 « 남자 » 라는 뜻입니다. 프랑쓰의 거의 대부분의 이름들은 남성형과 여성형이 있는데, André 도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Andrée 라는 여자 이름이 있습니다 (발음은 같음 : [엉드레]). 딸한테 « 남자애 » 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이지만, 모든 부모들이 이름들의 기원을 다 알고 있거나, 이름을 지을 때 항상 기원을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요. 단지 발음이 예쁘다거나, 성과 같이 발음했을 때 잘 어울린다거나, 부모나 친척 이름을 따거나 하는 경우들이 많지요. 아니면 이름에도 세대별로 유행이 있습니다. Andrée 라는 이름은 옛날에 유행했던 이름으로,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날 극히 드물고, 그나마 다 할머니들이지요. 남자 이름 André 역시 젊은 층에서는 드문 편이나, 그래도 간혹 발견됩니다.

andro- 와 -gyne 를 합하면 androgyne 이 되지요. 이 말은 즉, 두 성을 모두 가졌다는 뜻입니다. 남자인데 여자처럼 생겼다거나, 여자인데 남자같은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간혹 있지요. 하지만 이 말은 주로 외모로 성을 구분하기 힘들 때만 쓰이고, 의학적으로 실제로 두 성을 가진 경우는 hermaphrodite 이란 말이 더 자주 쓰입니다. 이 말은 사실은 고유명사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에르마프로딧 (Hermaphrodite) 은 그리쓰 신화의 인물로, 에르메쓰 (Hermès) 와 아프로딧 (Aphrodite) 의 아들이었는데, 어느날 쌀라마씨쓰 (Salmacis) 라는 이름의 낭프가 그의 미모를 보고는 사랑에 빠져, 그를 껴안고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애원이 하도 간절해서 신들이 결국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해 주었기 때문에, 에르마프로딧은 양성을 모두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vendredi 16 mars 2007

다양한 포비 (différentes phobies)

접미사 -phile 의 반대말을 만드는, -phobe-phobie 라는 접미사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쓰어 phobia = « 겁, 두려움, 공포 »). 예를 들어,
  • francophile = « 프랑쓰 (프랑쓰의 언어, 문화, 사람...)를 좋아하는 »
  • francophobe = « 프랑쓰를 싫어하는 »
  • xénophile = « 외국(인)에 우호적인 »
  • xénophobe = « 외국(인)에 적대적인 »
-phobe 으로 끝나는 말은 원칙적으로 형용사이지만, 명사로 쓰이면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한 성향 자체, 상태, 증상을 표현하려면 -phobie 라는 접미사를 써야지요. francophobie, xénophobie, etc.

사실 포비라는 것은 엄격하게는 병으로서, 심리학적 치료도 받고 그래야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그 지경까지 이르지 않는데도 좀 과장해서, « 무슨무슨 포비 » 라는 말을 자주 쓰지요. 많이 알려진 포비들로,
  • claustrophobie = (좁은) 공간에 갇히는데 대한 두려움 ;
  • agoraphobie = 넓은 공간에 대한 겁 ;
  • acrophobie = 높은 장소에 대한 공포, 현기증 ;
  • éreuthophobie = 얼굴이 빨개질까봐 걱정하는 두려움 ;
  • hydrophobie = 물에 대한 공포 ;
  • photophobie = 빛을 싫어함 ;
  • zoophobie = 동물에 대한 혐오.
동물 중에서도,
  • 뱀을 무서워하면 = ophiophobie ;
  • 개구리와 두꺼비를 싫어하면 = batrachophobie ;
  • 곤충이 겁나면 = acarophobie ;
  • 유달리 거미를 싫어하면 = arachnophobie
라고 합니다. 사람도 동물이니까, 계속해 볼까요 ?
  • 의사를 겁내면 = iatrophobie ;
  • 대머리 아저씨가 싫다면 = péladophobie ;
  • 써커쓰의 어릿광대가 무서우면 = coulrophobie ;
  • 관중, 대중에 대한 겁 = ochlophobie.
동물 뿐 아니라 야채를 겁내하는 증상도 있습니다 = lachanophobie.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공포 :
  • 괴물에 대한 겁 = tératophobie ;
  • 유령, 귀신에 대한 두려움 = phasmophobie ;
  • 지옥에 대한 두려움 = stygiophobie.
그 외에도 별별 포비가 다 있습니다 :
  • 털이 무서우면 = trichophobie ;
  • 그 중에서도 특히 수염에 대한 공포 = pogonophobie ;
  • 인공위성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 kéraunothnetophobie ;
  • 산 채로 매장당할까를 두려워하는 공포 = taphophobie ;
  • 변비 공포 = apophathodiaphulatophobie ;
  • 간지러움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 ptéronophobie ;
  • 흰 종이에 대한 무서움 = leucosélophobie ;
  • 흰 눈 (하늘에서 내리는) 에 대한 공포 = chionophobie ;
  • 숫자 13에 대한 겁 = triskaïdékaphobie.
그리고 겁을 먹는 것에 대해 겁을 먹으면, phobophobie 라 하고, 이 모든 것을 다 겁내면 pantophobie 라 한답니다.

물론 이 중 많은 단어들은 억지로 어려운 어원을 찾아내서 만든 신조어로서 사실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그치만 재밌지 않나요 ? (물론 이러한 포비를 겪는 사람들은 전혀 재밌어하지 않겠지만)^^

jeudi 15 mars 2007

접미사 -phile 과 수집가 (collectionneur)

얼마전 그리쓰어에서 유래한 접두사 phil- 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같은 말이 접미사로도 쓰입니다. 다만 이 때는 -phile 이라는 형태가 됩니다. -phile 로 끝나는 말은 대부분 형용사 (a) 와 명사 (n), 두 용법으로 모두 쓰입니다. 예 : 어제 fabophile = « faba (라띠나어로 « 콩 ») 를 좋아하는 » (a) ; « 걀렛 데 르와의 페브를 모으는 사람 » (n).

말이 나온 김에, molafabophile 이라는 단어도 볼까요 ? mola (라띠나어로 « 맷돌 ») + faba. 이 말은 « 커피 원두를 가는 기구 또는 기계를 좋아하는 » (a), 그래서 « 그것들을 수집하는 사람 » (n) 을 말합니다.

또다른 재밌는 수집가 중에 arctophile 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rktos 는 고대 그리쓰말로 « 곰 ». 따라서 « 곰인형을 좋아하는 », « 곰인형 수집가 ». 불어로 « 북극 » 을 arctique 라 하는데, 이 말의 원뜻은 « 곰에 관련된, 곰의 지역 » 입니다. 이것은 북극에 곰이 살기 때문이 아니라, 북쪽 하늘에 떠 있는 큰곰 별자리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 « 포도주병에 붙은 표딱지를 모으는 사람 » 은 éthylabélophile 이라 합니다. éthyle (알콜) + label (표딱지) + -phile ;
  • « 사진기를 모으는 사람 » = iconomécanophile = icône (그림) + mécano (기계) + -phile ;
  • « 나비 수집가 » = lépidoptèrophile. lépidoptères 는 라띠나어에서 온 말로, 나비 종류를 통칭하는 동물학 용어 ;
  • « 연필, 볼펜 수집가 » = calamophile. 라띠나어로 calamus, 불어로 calame 이라 부르는 것은, 갈대 줄기를 잘라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서 사용하던 필기도구로, 오늘날에도 서예가들은 꺌람을 씁니다. 참고로 저의 꺌람 :

mon calame
마지막으로, 쉬운 단어, « 책을 모으는 사람 » = bibliophile (그리쓰어 biblion = « 책 »). 이 수집은 위의 다른 수집에 비하면 너무 쉽고 평범해 보이죠 ? 하지만 비블리오필은 옛날 책, 희귀한 책, 초판본 등만 모으는 사람이고, 아무책이나 다 모으는 사람은 bibliomane 이라 합니다.

mercredi 14 mars 2007

주의 공현 축일 (Épiphanie)

고대 그리쓰어에서 유래된 형용사 épiphane 의 뜻을 어제 설명했지요 ? 이 말의 명사형은 Épiphanie 라고 하고, 원뜻은 역시, « 모습을 드러냄, 출현 »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불어에서 실제로 일반 명사처럼 쓰이는 일은 드물고, 항상 대문자로 시작하여 고유 명사로 쓰입니다 (마치 NoëlPâques 처럼). 이것은 « 주의 공현 축일 » 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날 꺄똘릭 신자들은 아기 예수가 세 명의 동방 박사 (rois mages) 에게 모습을 드러냈음을 기념합니다. 정확한 날짜는 1월 6일로 정해져 있는데, 프랑쓰에서는 1월 첫번째 일요일에, 따라서 매년 다른 날짜에 이 축일을 치룹니다.

이 날 프랑쓰에서는 galette des rois (왕들의 걀렛) 라는 과자를 먹습니다. galette 이라는 말은 galet (얇은 조약돌) 에서 온 말로, 대개 동그랗고 얄팍한 과자를 지칭하는데, 크기와 두께와 재료가 매우 다양합니다. 정말 조약돌만하고 바삭바삭한 걀렛이 있는가 하면, 삣짜만한 크기에 말랑말랑한 걀렛도 있습니다. 또 크렙 (crêpe) 이나 감자 부침 같은 것도 걀렛이라 부르기도 하구요.

galette des rois entourée de trois rois mages

걀렛 데 르와는 종잇장 반죽 (pâte feuilletée) 의 빵 속에 프렁지빤 (frangipane) 이라는 아몬드 크림을 넣은 과자로 (만드는 법), 크기는 매우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는 4-6 인용이 제일 많지요. 옛날에는 에삐파니 날만 먹었나본데, 이제는 성탄절 이전부터 시작해서 1월이 끝나도록 도처에서 팝니다. 저는 솔직히 이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요즘은 점점, 프렁지빤을 넣은 전통 걀렛 외에도, 다양한 향과 좀 덜 달고, 덜 느끼하고, 더 가벼운, 변형 걀렛들이 나오는 추세입니다 (그 중 한 예).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자의 맛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페브 (fève) 이므로, 매년 1월이면 먹기 싫어도 꾹 참고, 억지로 여러 판을 먹습니다.^^

페브라는 것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콩인데, 걀렛 데 르와를 만들 때에 이 콩 하나를 숨겨 넣습니다. 나중에 식구들이나 친구들끼리 모여 과자를 나눠 먹다가 보면, 반드시 한 명이 페브를 발견하겠지요 ? 그러면 그 사람이 왕 또는 여왕이 됩니다. 그 때문에 걀렛 데 르와를 사면 꼭 왕관을 하나씩 줍니다. 왕이 된 사람은 왕비를, 여왕이 된 사람은 왕을, 같이 걀렛을 먹던 사람들 중 뽑습니다.

이를 위해 옛날에는 실제로 말린 페브 콩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콩 대신 사기로 된 작은 인형 따위를 숨기게 되었고, 그것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년에 한 번, 걀렛 데 르와를 먹으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페브를 모으는 사람들을 fabophile 이라 합니다. 저는 파보필이라 하기에는 너무 약소하나, voici ma collection :

ma collection de fèves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예뻐하는 페브 두 개 :

아스떼릭쓰의 날개달린 모자와 마법사 메를랑

mardi 13 mars 2007

로젯의 돌 (pierre de Rosette)

프똘레메 4세 필로빠또르의 아들이자, 프똘레메 6세 필로메또르의 아버지인, 프똘레메 5세에게는 Épiphane 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쓰어로 « 조명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눈에 드러난, 빛나는 », 따라서 « 유명한, 이름 높은 » 등등의 뜻입니다. 기원전 약 200년 무렵에 통치했던 이 파라옹이, 자신이 새로 제정한 법률 하나를 커다란 돌판에다 세가지 문자를 사용하여 새기게 한 적이 있는데, 이 돌판이 거의 이천년간 땅 속에 파묻혀 있다가, 1799년에 나뽈레옹 보나빠르뜨 수하의 한 장교인 부샤르 (Pierre-François-Xavier Bouchard) 라는 사람에 의하여, 에집트의 라쉬드란 도시에서 발견이 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불어로는 Rosette 이라 부르기 때문에, 이 돌은 로젯의 돌이라 칭해지게 되었습니다.

로젯의 돌

로젯의 돌의 특징은 같은 내용의 문구가 두 가지 언어와 세 가지 문자 체계, 즉 고대 그리쓰어, 고대 에집트어 상형 문자 (hiéroglyphe), 고대 에집트어 데모틱 문자 (démotique) 로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데모틱 문자란, 말 그대로, demos, 즉 « 대중, 민중 » 이 쓰던 글자를 말합니다.

세 글자 중 당시에 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던 유일한 언어는 고대 그리쓰어였는데, 이 그리쓰어로 쓰여진 마지막 문구에 의하면, 같은 내용을 다른 두가지 문자로 옮겨 쓴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상형 문자와 데모틱 문자가 같은 내용의 번역임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 학자들이 해독을 시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결국은 셩뽈리옹 (Jean-François Champollion, 1790-1832) 에 의해서, 1822년 해독이 이루어졌습니다. 수세기 동안 해독이 불가능했던 상형 문자와 데모틱 문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에집트학 (égyptologie) 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죠.

셩뽈리옹은 프랑쓰에서 매우 유명합니다. 그의 이름을 딴 길, 학교, 도서관, 박물관, 단체 등이 각 도시마다 즐비하고, 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프랑쓰의 에집트학은 상당히 수준히 높은 듯 합니다 (사실 저는 잘 모르지만). 또 일반 프랑쓰 사람들도 제가 보기에는 매우 놀라울 정도로 고대 에집트의 문명과 신화를 잘 알고들 있습니다. 그리고 빠리의 꽁꼬르드 광장 한복판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나 루브르 마당의 유리 삐라미드 등도 에집트에 대한 프랑쓰의 관심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겠지요?

꽁꼬르드 광장의 오벨리스끄

그리고 한편, pierre de Rosette 이라는 말은 이제 숙어화 되어서, «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받침이 되는 열쇠, 기본 » 등의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뽐뀌

dimanche 11 mars 2007

좋아하는 (phil-, philo-)

고대 그리쓰어에서 philo 는 « 친구 » 라는 명사이고, philein 은 « 사랑하다 » 라는 동사입니다. 따라서 이 말이 들어가면 항상 « 좋아한다 » 는 의미가 있지요. 유명한 예가 philosophie (철학) 로, 이 말은 philo- 와 sophie (지식, 지혜) 로 구성되었습니다. Philippe 이라는, 오늘날 흔하디 흔한 이름이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어제 메싸쥬에서 얘기한 바 있구요. 그 외에도 philharmonique 이라고 하면, « 화음 (harmonie) 즉, 음악을 좋아한다 » 는 뜻이고, philatélie 는 « atelos 를 좋아한다 » 는 뜻인데, atelos 란, 세금 (telos) 을 면제받았음 (a-) 을 증명하는 작은 종이 딱지였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인지 (timbre) 와 우표 (timbre-poste) 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philatélie 란 « 우표 수집 » 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Philadelphia 라는 도시가 있지요 ? 이것은 « 형제애 » 라는 뜻입니다 (adelphos = 형제, 자매).

고대 에집트에는 그리쓰 출신의 프똘레메 (Ptolémée) 라는 이름의 왕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항상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 중 프똘레메 2세는 Philadelphe 라 불리었는데, 이것은 그가 자기 누이 (adelphe) 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또, 프똘레메 4세는 Philopator 라 불리었는데, 이 말은 « 아버지를 사랑하는 » 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어머니를 살해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죽이지는 않았으니, 상대적으로 사랑했다고 보는 것일까요 ? 반면 프똘레메 6세는 Philométor 라 불리는데,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 어머니를 사랑하는 » 이란 뜻이지요. 이것은 그가 매우 어린 나이에 왕이 되는 바람에, 어머니인 끌레오빠트르 1세 (Cléopâtre Ire) 의 영향력 밑에 있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samedi 10 mars 2007

말 (cheval) 에 관련된 단어들

caballus 에 밀려 equus 는 비록 희귀한 단어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몇 파생어들을 불어에 남겼습니다 :
  • équitation = « 승마 »
  • équestre = « 승마의 »
  • équidés = « 말과 ». 동물학적으로 말 종류를 총칭하는 단어
  • équin(e) = « 말의, 말 모양의 »
등등... 그런가하면, 고대 그리쓰어 hippos 역시 불어에 여러 파생어를 낳았습니다 :
  • hippisme = « 승마, 경마 »
  • hippique = 윗단어의 형용사
  • hippodrome = « 승마장, 경마장 »
  • hippologie = « 말을 연구하는 학문 »
  • hippotechnie = « 말 훈련술 »
  • hippomobile = « 말의 힘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말이 끄는 »
  • hippophagie = « 말고기 식생활 »
그리고 또 진짜 말은 아니지만, 고대 그리쓰 사람들이 말과 닮았다고 생각하거나 상상한 동물들 :
  • hippopotame = hippo (말) + potame (강) = 강에서 사는 말 = « 하마 »
  • hippocampe = 이 단어는 애초에는 반은 말의 모습이고 반은 물고기의 모습인, 신화 속의 동물이었는데, 현재는 « 해마 » 를 가리킵니다.
  • hippogriffe = 역시 전설적인 동물로, 반은 말의 모습이고 반은 griffon 의 모습. 그리퐁이라는 것은 역시 신화 속 동물로, 날개달린 사자 비슷하게 생긴 동물입니다. 아리 뽀떼르 (Harry Potter) 의 한 일화에 보면, 이 이뽀그리프라는 동물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쓰를 비롯하여 서양에 널리 퍼진 남자 이름 :
  • Philippe = phil- (좋아하는) + hippo (말). 즉, « 말을 좋아하는 (사람) » 이라는 뜻입니다.

vendredi 9 mars 2007

말 탄 사람 (cavalier et chevalier)

이전 비예에서 cavalier 는 사람의 이름이지만, 일반 명사로는 « 말을 타는 사람 » 을 뜻합니다. « 말을 타는 여자 » 는 cavalière [꺄발리에르]. 이 단어는 직접적으로는 이딸리아어 cavaliere [까발리에레] 에서 수입되었고, 멀리는 라띠나어 caballarius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편 cavalier 보다 훨씬 전부터 사용되던 비슷한 단어가 하나 더 있으니, 즉 chevalier 입니다. 이 말 역시 라띠나어 caballarius 를 어원으로 하며, 사실 이 단어야말로 라띠나어가 자연스럽게 불어화 된 경우입니다 (cavalier 가 이딸리아어의 차용인데 비하여). 그런데 cavalierchevalier 는 약간 뜻이 다릅니다. cavalier 는 « 일반적으로 말을 타는 사람 (직업적 경마 기수든, 취미로 승마를 즐기는 사람이든) » 을 가리키지만, chevalier 는 « 중세의 봉건 귀족 » 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물론 애초에는 chevalier 역시 말을 타는 사람이란 뜻이었지만, 중세에 말을 타던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 기사들이었기 때문에 뜻이 약간 변화한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귀족 계층 전체를 의미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특히 젊고, 아직 계급이 낮은 귀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중세 기사들은 모두 남자들이었으므로, cavalière 와는 달리 chevalier 에 해당하는 여성형은 없습니다. (chevalière 라는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뜻입니다.)

동물 말은 라띠나어로 caballus 라고 하는데, 이 어휘의 원뜻은 « 나쁜 말 (건강이 안 좋은 말, 늙은 말, 못생긴 말, 잡종말) » 이었습니다. 보다 중립적인 의미에서의 말은 equus 라고 했었지요. 하지만 이미 로마 시대때부터 caballus 라는 단어가 구어체에서 널리 쓰이게 되어, equus 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뜻 역시 나쁘다는 의미가 사라져서, 그저 일반적인 말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단어가 발전하여, 불어에서는 cheval 이 되었고, 옥어로는 caval, 이딸리아에서는 cavallo, 에스빠냐어에서는 caballo 등이 된 것이지요.

jeudi 8 mars 2007

Alain Cavalier

Alain Cavalier est un de mes réalisateurs préférés, bien que je ne connaisse pas tous ses films. Mais de toute façon, un seul suffirait, le célèbre Thérèse. Comment ne pas admirer cette simplicité déroutante ? Et la façon de filmer et de construire l'histoire de Cavalier est exactement à l'image de la sainte de Lisieux dont la vie a beaucoup marqué ma jeunesse.

Mais le film que j'aime encore plus est peut-être La Chamade. C'est un film léger et triste, ou plutôt mélancolique. Je me sens très proche de Thérèse, mais c'est une sainte ! Moi, je ne vis pas comme elle. En revanche, je me sens vraiment très proche de Lucile, personnage joué par Catherine Deneuve dans La Chamade, et je vis exactement comme elle ! C'est quasiment ma vie incarnée sur l'écran. En un sens, Lucile et Thérèse se ressemblent, car elles choisissent de vivre une vie simple, chacune à sa manière.

J'aime beaucoup aussi les petits films de Cavalier où il se met en première personne, tels que Lettre d'Alain Cavalier ou Georges de la Tour. Dans ces courts-métrages, on voit les gestes quotidiens de cet homme simple et modeste, et on entend sa voix calme et douce, à la fois hésitante et sûre de ses convictions. Dans Lettre d'Alain Cavalier, il y a une scène que j'aime beaucoup : il épluche une orange et il la découpe assez irrégulièrement, puis il la mange. C'est de la poésie absolue ! Ces petits documentaires ressemblent en un sens aux films d'Agnès Varda. Chez les deux, les films ont l'air de rien et de n'importe quoi, mais au fond, ils sont très cohérents et possèdent un grand pouvoir d'émotion.

Alain Cavalier, 7 chapitres, 5 jours, 2 pièces-cuisine est un film de Jean-Pierre Limosin, mais comme celui-ci n'intervient pas du tout et qu'on ne voit tout au long du film qu'une seule personne, c'est-à-dire, A. Cavalier expliquant ses idées, sa vie, sa vision, on dirait presque c'est un film fait par lui-même. En tout cas, ce film nous apprend beaucoup sur lui et nous fait l'aimer encore plus.

Merci, Alain Cavalier et Agnès Varda, d'exister.

Juliette ou la clé des songes

N'est-ce pas un titre merveilleux ? Je trouve que c'est une petite phrase qui suscite la curiosité, qui intrigue, qui invite ceux qui l'entendent à - justement - songer et rêver. C'est d'abord le titre d'une pièce de théâtre de Georges Neveux, puis d'un opéra de Bohuslav Martinu, et aussi d'un film de Marcel Carné.

C'est une histoire surréaliste qui a lieu dans un village du Midi dont les habitants n'ont pas la capacité de se souvenir de quoi que ce soit. Seul Michel se souvient qu'il aimait Juliette. Mais est-ce une fille réelle ? À la fin, on ne sait plus qui rêve de quoi et la fin se relie au début, formant ainsi un cercle infini. Personnellement, je trouve le sujet très séduisant. Et c'est encore une autre histoire des deux amants qui appartiennent à deux mondes différents (comme King Kong).

Je ne sais pas trop quoi dire au sujet de l'opéra de Martinu, n'ayant jamais eu la chance d'en voir une représentation scénique. À n'en juger que d'après la musique, je dois avouer que celle-ci ne me fait pas « rêver » beaucoup. Je ne qualifierais pas le langage musical du compositeur tchèque d'onirique, bien que certains estiment qu'on ne trouve nulle part ailleurs autant de Debussy que chez Martinu.

Le film de Carné n'est pas mal. Il a un côté poétique, onirique, fantastique. Gérard Philipe est très bien, avec un regard triste et rêveur. L'image en noir et blanc d'Alekan donne quelques plans superbes. Mais malgré la participation de Neveux au scénario et au dialogue, le film est devenu quelque chose de différent de la pièce originale et de l'opéra. Entre autres bizarreries, ici Barbe-Bleue s'est introduit. Et c'est très malheureux. L'histoire devient enfantin et un peu ridicule. Mais au moins, la fin est respectée, Gérard Philipe recommençant le début du film.

L'image en noir et blanc, cette jeune femme un peu mystérieuse qui n'existe que dans le rêve et le héros qui est tout le temps à sa recherche, tout cela m'a rappelé un peu Le Portrait de Jennie, un film et un roman que j'ai beaucoup aimé jadis. Cela fait longtemps que je n'ai pas revu ce film. Je me demande si je retrouverais la même sensation qu'avant si je revoyais le film. En tout cas, dans mes « souvenirs », c'est aussi l'histoire d'une fille mystérieuse qui disparaît tout le temps et qui vit dans une sorte de monde parallèle, filmée en noir et blanc et d'une façon assez onirique.

mardi 6 mars 2007

King Kong

Hier, j'ai vu King Kong de Peter Jackson. A priori, ce n'est pas du tout un film qui m'intéressait, mais bon, ça passait à la télé, et je voulais quand même savoir de quoi il s'agissait, cette histoire de gros singe, pourquoi elle est si célèbre et pourquoi il y a eu plusieurs adaptations... Et puis, il y a aussi Naomi Watts.

Le film se révèle finalement pas trop mal tout en restant conventionnel. C'est surtout l'histoire elle-même qui m'a assez ému, car c'est une histoire de l'amour impossible. La comparaison peut paraître curieuse, mais le film m'a rappelé l'histoire de Giselle et Albert, deux amants qui eux aussi appartiennent chacun à un monde différent. A l'instar des willis qui veulent tuer Albert, les êtres humains veulent éliminer le gorille géant. Et tout comme Giselle, Naomi Watts essaie de sauver King Kong. Mais quel que soit le résultat, l'issu était condamné depuis longtemps. Dans les deux cas, le couple ne peut jamais se réunir.

vendredi 2 mars 2007

부정문 (négation)

프랑쓰어에서 부정문을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항상 두 요소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ne... pas.

영어에서는 not, 독어에서는 nicht 만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하면, 좀 이상하죠 ? 영어, 독일어보다 훨씬 더 불어와 가까운 이딸리아어나 에스빠냐어만 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각각 nonno 만 집어 넣으면 부정문이 되지요.

처음에는 불어도 그랬습니다. 그 뒤에 paspoint 이니 miegoutte 등을 덧붙인 것은 처음에는 순전히 한번 더 강조를 위해서였을 뿐, 없어도 그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그 본연의 의미로만 쓰였습니다. 즉 pas (걸음) 는 아무 문장에나 붙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연관된 동사가 있어야만 뜻이 통했지요. 예를 들면, je ne marche 라고만 해도, « 나는 걷지 않는다 » 는 뜻인데, je ne marche pas 라고 함으로써, « 나는 단 한 걸음도, 한 발자국도 걷지 않는다 » 고 강조를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je ne mange 라고만 해도, « 먹지 않는다 » 는 의미이지만, 더욱더 강조를 하기 위해서, je ne mange mie 라고 한 것이지요. 즉, « 아무리 작은 빵부스러기 한 알도 먹지 않는다 ». point (점), goutte (방울) 등도 마찬가지 용법으로 쓰였으며, 그 외에도 ail (마늘 한 쪽), clou (못), miette (mie 보다 더 작은 빵 부스러기), grain (곡식 한 알) 등 역시 각각 걸맞는 동사와 함께 자주 사용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런 말들은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저 « 아주 작은 양 » 을 뜻하게 되면서, 아무 동사들하고나 어울려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무렵부터는 다른 형태들은 점점 드물어지고 paspoint 의 사용이 대폭 늘어나 거의 표준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현재에도 간혹 옛스런 표현에는 miegoutte 을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 보조어 없이 ne 만 사용해도, 원칙상으로는 부정문으로 인정이 되구요. 하지만 이것은 고급문장에서나 그렇고, 일반적으로는, 그리고 특히 구어체에서는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어, ne 는 생략될 수 있어도, pas 는 생략되면 안되게 되어버렸습니다. 애초에는 프랑쓰어에서 부정어는 non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12세기부터 이 말에 강세가 사라지면서 ne 로 변화였습니다. 그래도 e 가 분명히 발음되었고, 하나의 독립된 음절로 처리되었지만, 현대로 오면서는 e 가 묵음이 되어, 오늘날 문장에서 ne 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paspoint 같은 두번째 요소가 부정문을 만드는데 필수적이 된 것입니다.

jeudi 1 mars 2007

res 에서 유래한 어휘들

« 공화국 » 을 칭하는 프랑쓰말 république 은 라띠나어 두 단어 res publica 가 결합된 말입니다. publica 는 « 대중의, 민중의, 백성의, 국민의, 공공의 » 등등의 뜻이 있는 형용사이고, res 는 « 사물, 사항, 사실 » 등등의 뜻이 있는 명사입니다. 현재 불어로 하면 chose publique, affaires publiques « 공적인 것, 공공 업무 » 라 번역되지요.

res 에서 파생된 말로 réel 이라는 형용사가 있습니다. 즉 « 사물과 관련된, 사실에 합당한 », 따라서 « 현실의 » 라는 뜻이죠. réalité 라는 명사나 réaliser 라는 동사 역시 여기서 나온 말임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 단, 프랑쓰 말에서 réaliser 동사는 « 영화를 찍는다 » 라는 뜻으로도 자주 쓰입니다. 즉 종이에 쓰여져 있던 글자와 생각을 말 그대로 « 사실화 시킨다 » 는 뜻이죠. 그래서 영화감독을 프랑쓰 말로는 réalisateur, réalisatrice 라고 합니다. 또 réaliser 동사는 음악적으로는 « 화성문제를 푼다 » 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숫자 따위로 구성되어 있는 화성 기호를 « 실제 » 음표로 다 풀이해서 적는다는 의미이죠. 그 외에도 réalisme, réaliste, réalisable 등등, 파생어가 파생어를 낳고, 불어에서 영어로 건너가고, 영어가 세계에 널리 퍼짐으로써, 오늘날 여러 나라 말들 중 res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단어가 상당수 될 겁니다. res 를 어원으로 삼아 프랑쓰에서 만들어진 매우 최신어로 réifier 라는 동사와 그의 명사형인 réification 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학적인 개념으로,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을) « 사물화하다, 사물의 성격을 주다 » 라는 뜻입니다.

res 는 불어에서 차차 모양이 변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rien 이 되었습니다. 현대 불어에서 rien 은 거의 항상 부정의 뜻으로 쓰이는데, 원래는 라띠나어에서와 마찬가지로 긍정의 뜻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je mange rien 이라고 하면, « 난 뭔가를 먹는다 » 는 뜻이었지요. 이것을 부정문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je NE mange rien 이라고 해야만 했고, 이 원칙이 16세기까지는 엄격히 지켜졌습니다. 그 이후로 점점 rien부정문에서만 쓰이게 되어, 혼자만 있어도 부정의 뜻이 강해지게 되었죠. 마침내 지금은, 구어체에서는, je mange rien 이라고만 해도 «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는 뜻으로 확고히 굳어져 버렸습니다. 영어로 치면 처음에는 thing, something 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이제는 nothing 의 의미로 변해버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