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anche 29 juillet 2007

끌로비쓰를 둘러싼 성인들 (les saints autour de Clovis)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끌로비쓰는 496년 12월 25일 랑쓰 (Reims) 에서 삼천명의 부하들과 함께, 당시 랑쓰의 주교였던 성 르미 또는 레미 (saint Remi ou Rémi) 로부터 영세를 받은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한낱 (?) « 야만인들 » 과 « 이단자들 » 의 두목에 불과했던 끌로비쓰를 기독교의 왕으로 새로 태어나게 함으로써, 성 르미는 프랑쓰가 꺄똘릭 국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성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끌로비쓰가 개종하는 데에 보다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 최소한 두 명 더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다름 아닌 그의 부인 성녀 끌로띨드 (sainte Clotilde) 였습니다. 끌로비쓰가 프랑쓰 최초의 왕이니만큼, 프랑쓰 최초의 왕비로 여겨지는 끌로띨드는 결혼 이전에 이미 천주교 신자로 개종했었으며, 남편은 물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종교적, 정치적 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끌로비쓰가 죽은 후 그녀는 뚜르 (Tours) 의 성 마르땅 수도원에서 은둔해서 살며, 매우 신심이 깊은 생활을 하여, 성인의 품에 올랐습니다.

성녀 끌로띨드에게는 성녀 쥰비에브 (sainte Geneviève) 라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쥰비에브는 또한 끌로비쓰의 정치 조언자이기도 했습니다. 성녀 쥰비에브는 451년 아띨라 (Attila) 가 이끄는 앙족 (Huns) 이 프랑쓰를 침략했을 때, 오로지 기도의 힘으로 빠리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빠리의 수호 성인이기도 합니다. 빠리 시내 한복판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작은 산도 하나 있지요. 몽마르트르도 산이라 하기에는 과장된 느낌이 있지만, 이 성녀 쥰비에브 산 (Montagne Sainte-Geneviève) 은 언덕이라는 이름조차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습니다. 하지만 워낙 평평한 빠리에서는 이 정도만 되어도 산이라고 부르지요. 이 산을 올라가는 비탈길에 쏘르본 대학교 (Université Paris-IV Sorbonne) 가 있으며, 산의 정상에는 끌로비쓰가 짓게 한 성녀 쥰비에브 수도원 (Abbaye de Sainte-Geneviève) 이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 성녀 쥰비에브와 성녀 끌로띨드 그리고 끌로비쓰가 매장되었었는데, 그 일부가 프랑쓰 혁명 때 파괴되고, 몇몇 살아 남은 유적은 현재 프랑쓰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로 꼽히는 엉리 4세 고등학교 (Lycée Henri IV) 의 건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그 맞은 편에 있는 뻥떼옹도 지금은 프랑쓰의 위인들을 안치하는 공공 건물이지만, 원래는 성녀 쥰비에브에게 바쳐졌던 성당이었습니다.

산 위의 성 에띠엔 성당 (Église Saint-Étienne-du-Mont) 과 엉리 4세 고등학교
성녀 쥰비에브 산 꼭대기 (?) 의 뻥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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