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19 juillet 2007

성 드니 (Saint Denis)

프랑쓰는 이딸리아와 더불어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딸리아 출신의 성인은 600 여명이 조금 넘고, 프랑쓰 출신은 600 여명이 조금 안됩니다. 하지만 사실 성인들의 국적과 수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데, 옛날에는 국적의 개념이 없거나 불확실했으며, 국경이 현재와는 달랐고, 또 집단 학살 당한 순교자들의 경우 이름과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삶이 어느 정도라도 알려져 있고, 개인적인 명목으로 성인이 된 사람의 수는 대략 2500명 정도이지만, 실제로 이름이 교회력에 기록된 인물들의 수는 그 두 배가 넘으며, 이름 모를 순교자들까지 다 합하면 성인의 수는 수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비록 성인들의 국적을 따지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몇몇 성인들은 프랑쓰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드니 (Denis) 라는 성인이 있는데, 그는 3세기 무렵 살았던 사람이며, 빠리의 첫 주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한 지방에 불과했던 빠리와 그 근방에서 선교를 하던 드니는 제국의 박해로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드니와 그의 제자들의 목이 잘린 장소는 당시 빠리 북쪽의 작은 산이었는데, 드니의 순교 이후 이 산은 Montmartre, 즉 « 순교자 (martyr) 의 산 (mont) » 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몽마르트르의 쒸잔-뷔이쏭 공원 (Square Suzanne-Buisson) 에 있는 성 드니의 동상

그런데 드니는 처형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자신의 잘린 목을 손에 들고는 계속하여 북쪽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약 6 킬로 정도를 걷고서야 성 드니는 완전히 목숨이 끊겼고, 그가 쓰러진 자리에는 곧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으며, 그 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쌍-드니 (Saint-Denis) 라 불리는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 빠리와 경계를 이루는 이 도시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 문제 » 도시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수세기 동안 이 도시는 프랑쓰 왕가의 공식 왕릉 역할을 했습니다. 몇몇 예외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프랑쓰의 거의 모든 왕과 왕비가 성 드니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에 매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