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26 novembre 2007

실종 (La Disparition)

죠르쥬 뻬렉 (Georges Perec, 1936-1982) 은 대회문 (Le Grand Palindrome) 을 비롯하여 특이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실종 (La Disparition, 1969)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실종된 인물을 찾는 일종의 탐정-추리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책의 제목에는 또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름아닌 글자 e 의 실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 삼백여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단 한번도 e 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문장들에서 e 자만 빼고 인쇄한 것이 아니라, e 가 들어있는 단어 자체를 작가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서양 언어에서나 e 라는 모음은 많이 쓰이겠지만, 불어에는 유난히 e 가 들어간 단어가 많습니다. 그리고 e 는 문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애초에는 e 가 없던 단어에도, e 를 첨가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동사의 시제를 변화시킬 때, 발음을 구별해야 할 때, 여성형을 만들 때, 등등. 따라서 e 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휘의 선택과 활용을 극도로 제한하겠다고 작가가 스스로에게 구속을 거는 것입니다. 뻬렉은 이러한 형식적인 틀에 구속을 받으면서도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다음은 그 중 한 문단 :
Il fut bon pour l'oto-rhino, un gars jovial, au poil ras, aux longs favoris roux, portant lorgnons, papillon gris à pois blancs, fumant un cigarillo qui puait l'alcool. L'oto-rhino prit son pouls, l'ausculta, introduisit un miroir rond sous son palais, tripota son pavillon, farfouilla son tympan, malaxa son larynx, son naso-pharynx, son sinus droit, sa cloison. L'oto-rhino faisait du bon travail, mais il sifflotait durant l'auscultation ; ça finit par aigrir Anton.

보다시피 e 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한 문단만 해도 정말 대단해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삼백쪽이나 계속되니, 그저 놀랍고 신기할 수 밖에 ! 어떻게 e 를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도 이리 교묘하게 문장을 만들어 나갈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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