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di 28 juillet 2009

제물포의 영웅들 (Les héros de Chemulpo)

오페라의 유령, 룰따비으 연작 등 많은 소설을 지은 갸스똥 르루 (Gaston Leroux) 는 그외에도 특이한 저작 하나를 남겼는데, 제목이 제물포의 영웅들 입니다. 졍르를 명쾌히 정의하기 힘든 이 책은 일종의 보고서 또는 증언록이라 말할 수 있는데, 거기에 약간의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기도 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빛이 바랜 느낌이 풀풀나고, 독창성이나 창조성이 돋보이기 보다는 그 유치함에 절로 살며시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제목만 보면 100여년 전에 살았던 프랑쓰의 작가 르루가 한국을 알고 있었나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책을 몇 쪽만 읽고 나면, 한국은 전혀 그의 관심이 아니었음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제목의 제물포 는 인천을 가리키는 게 맞지만, 영웅들 이란 제물포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한 러시아 장교와 군인들을 칭송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1904 년 일본 측의 공격으로 우리 나라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제물포 전투는 러일전쟁의 시작이 되었으며, 당시 극동 지역에 주둔해 있던 많은 서구 세력들에게 목격되어 상당한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특히 선전포고도 없이 국제법을 어기면서, 중립지역이었던 제물포에서 러시아를 공격한 일본군의 만행에 많은 사람들이 놀란 듯 합니다. 그렇다면 르루도 그 중 한 명으로 한국에 와 있었던 것일까요 ? 그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자였으니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습니다. 르루는 제물포 전투에서 살아 남아 돌아오던 러시아 군인들을 쒸에즈 운하 (Canal de Suez) 의 싸이드 항 (Port Saïd) 에서 만나, 그들의 배를 함께 얻어타고 마르쎄이으로 돌아오면서 군인들을 면담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러시아인들의 증언을 옮긴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면서 증언에 보다 생동감을 주려 했는지, 대화체와 소설적인 서술법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르루가 한국에 온 것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약간 아쉽지만, 그래도 책이 당시의 상황을 충실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역사 자료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소설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가미되어 있어서, 어딘가 모르게 공정성,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저는 동양 근대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이 얼마나 정확하고 중요한 자료인지 엄밀히 판단할 수는 없으나, 책의 시작부터 르루 자신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애를 태우다가 어렵사리 싸이드 항에 도착하여 러시아인들을 만나게 된 것인지부터 시작하여, 책의 구성, 문체, 모든 것에서 당시 전투의 심각성보다는 그저 르루 본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웅으로 떠받드는 러시아 군인들에 대한 찬미와 칭송이 지나치게 두드러진 것 같아, 읽기가 거북했습니다.

또한 이 책에는 죠안쏜 (Ar. Johanson) 이라는 사람이 르루의 글을 묘사한 그림이 여러 장 함께 실려 있습니다. 글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핑계 하에, 이렇게 그림이나 삽화를 삽입하는 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보편적인 관습이긴 했지만, 오늘날에는 어딘가 모르게 유치하고 어설프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눈길을 끄는 제목과는 달리, 저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극동의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의미있는 자료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