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18 mars 2010

블렁슈 드 꺄스띠으 (Blanche de Castille)

루이 8세의 왕비였던 블렁슈 드 꺄스띠으 (1188-1200-1252) 는 프랑쓰 역사상 최초의 여자 섭정 (régente) 이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섭정 기간 (régence) 을 가졌습니다. 첫번째는 남편 루이 8세가 갑자기 죽고 아들 루이 9세가 아직 어린 시절이었을 때, 또 한번은 루이 9세가 성인 (adulte) 이 된 후에 십자군 전쟁을 떠나있던 기간이었습니다.

꺄스띠야 (Castilla = Castille) 의 인판따였던 블랑까 (Blanca = Blanche) 는 열 두 살의 나이에 훗날 프랑쓰의 왕이 될 루이 8세와 결혼하게 되어 프랑쓰로 옵니다. 그리고 이 어린 부부는 남매처럼 함께 자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사실상 유럽 왕가의 정략 결혼 중에서 이렇게 행복한 결혼은 역사를 통틀어서 별로 찾아 보기 힘들지요. 오랜 세월을 왕세자로만 보냈던 루이 8세는 왕이 되자마자 알비 십자군 전쟁을 치루러 왕궁을 떠났으므로, 블렁슈는 사실상 이미 남편이 살아 있던 시절부터 빠리에 머물면서 실질적인 정치를 했습니다. 물론 아내를 완전히 믿는 남편의 허락 하에 그러했던 것이지요.

루이 8세가 왕이 된지 3년 만에 숨을 거두면서 어린 아들 루이 9세의 섭정으로 그 어머니인 블렁슈 드 꺄스띠으를 지칭함으로써 그녀는 공식적으로 프랑쓰의 최고 권력을 쥐게 됩니다. 그 이전에도 프랑쓰에 섭정이 있었던 적은 두어번 있었으나, 여자에게 섭정권을 준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블렁슈는 1226년 루이 8세가 숨을 거둔 때부터 1235년 루이 9세가 성인 (adulte) 으로 공표될 때까지 9년간 프랑쓰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이미 남편이 죽기 전부터 정치에 참여했고, 아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에, 그녀가 실권을 행사한 기간은 더 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세력을 제대로 정착시키지도 못한 채 루이 8세가 죽고, 어린 아이가 왕이 되고, 여자가 권력을 잡게 되자, 여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또는 이 틈을 타 대세를 뒤집어 보려던 귀족들이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정치술과 판단력, 결단력이 매우 뛰어났던 블렁슈는 모든 반란을 다 진압하고 왕권을 오히려 강화시켰습니다. 그녀는 또한 남편이 참여했던 알비 십자군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지어 뚤루즈 백작령 (comté de Toulouse) 의 절반 이상을 프랑쓰령으로 합병하였습니다.

루이 9세와 블렁슈 드 꺄스띠으의 관계는 매우 애틋했던 것 같습니다. 블렁슈는 장남 (엄격히는 장남이 아니지만 위의 세 형이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으므로) 루이 9세를 다른 아들들 보다 끔찍히 여겼던 것 같고, 매우 신심 깊고 곧은 성격이었던 루이 9세는 어머니를 무척 공경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장한 루이 9세는 독자적으로 정치를 하면서도 어머니의 의견을 자주 참고했고, 1248년 제 7 차 십자군 전쟁을 떠나면서는 공식적으로 블렁슈 드 꺄스띠으를 프랑쓰의 섭정으로 임명합니다. 이 때 블렁슈의 나이는 60살이었지요. 그런데 에집트로 떠났던 루이 9세가 결국 그곳에서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프랑쓰에서는 목동들의 반란 (révolte des pastoureaux) 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가난한 목동들, 초라한 농민들이 왕을 구하러 가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특권층에 대한 봉기로 돌변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아들을 구하러 가겠다는 백성들의 열정에 감동받았던 블렁슈는 이것이 반란으로 돌아서자 엄하게 진압합니다.

번번이 그녀의 섭정 기간마다 반란이 있었고 그걸 성공적으로 다스렸기에, 블렁슈 드 꺄스띠으는 무섭고 냉정하고 표독한 여자로 그려지기도 했고, 남편과 아들로부터 왕권을 빼았을 정도로 권력을 좋아한 여자라는 인상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으며, 며느리 마르그릿 드 프로벙쓰와의 관계 때문에 악독한 시어머니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상당히 현실적인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매우 균형있게 나라를 다스린 것으로 평가합니다. 싫든 좋든 그녀는 프랑쓰 최초의 여왕이라 할 만합니다. 쌀릭법 때문에 여자는 왕이 될 수 없었던 프랑쓰에서 그녀는 사실상 왕이나 다름 없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목동들의 반란을 진압한지 얼마 되지 않아 블렁슈는 64살의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십자군 전쟁을 떠난 루이 9세, 그녀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사랑했던 아들은 다시 보지 못한 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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